대만 검찰이 엔비디아 B300 서버 130대 중 74대를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9명을 기소하면서, 수출통제 집행이 제품에서 유통망과 개인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드러났다. 화이트리스트 등재와 최종사용자 문서 위조, 제3국 환적이 겹친 다단계 우회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한국 반도체·서버 기업은 최종사용자 확인, 환적 경로 추적, 거래 문서의 진위라는 세 지점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대만 지룽지검이 8월 24일 엔비디아 첨단 AI 칩이 실린 서버를 중국으로 빼돌린 혐의로 9명을 기소했다. 핵심 수치는 이렇다. 슈퍼마이크로에서 주문한 엔비디아 B300 탑재 서버 130대 가운데 74대가 실제로 중국 고객에게 넘어갔고, 나머지 56대는 대만 세관에서 걸렸다. 규모는 약 260억 원(6억 대만달러)이다.

Bilal Ahmed
수법은 한두 단계가 아니었다. 우선 페이후 테크놀러지라는 업체가 엔비디아의 구매자 '화이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그다음 대만 데이터센터에서 서버를 정상적으로 쓰는 것처럼 최종사용자 서류를 꾸몄다. 미국 제재 대상국에 팔지 않겠다는 서약서까지 제출했다.
실제 물량은 인도네시아와 일본, 홍콩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갔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경유가 50대, 일본 경유가 8대였고 나머지는 직접 중국으로 나갔다. 대만 세관이 전략물자 수출허가증을 요구하자 관련 문서를 위조한 대목에서 전체 네트워크가 드러났다. 그래서 혐의도 단순 밀수가 아니라 배임과 문서위조다.
이 사건이 던지는 신호는 통제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22년부터 고성능 AI 칩의 대중국 수출을 막아 왔지만, 칩 자체가 아니라 완제품 서버가 유통망을 타고 새는 방식은 국경 검사만으로 잡기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 형사 기소됐다. 기소 대상에는 엔비디아 대만지사 유통 담당자와 슈퍼마이크로 대만지사 영업 담당자가 포함됐다. 엔비디아는 직원들이 법을 지킬 유인이 충분하다며 협조 방침을 밝혔고, 슈퍼마이크로는 자사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다섯 달 전 미국 법무부가 슈퍼마이크로 공동창업자 등을 25억 달러 규모 우회 반출 혐의로 기소한 사건과 맞물리면서, 미국과 대만이 같은 그물을 좁히는 모양새가 됐다. 통제가 제품에서 유통·개인으로, 그리고 국경을 넘는 공조로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에도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전략물자 수출입고시와 대외무역법상 캐치올 규정으로 자체 수출통제를 운용하고 있고, 미국은 중국산 칩이 한국을 경유해 '국적세탁'된다는 의심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이번 사건에서 뽑아낼 점검 항목은 구체적이다.
첫째, 최종사용자 확인이다. 서류상 목적지와 실제 사용처가 다른 거래가 이번 우회의 출발점이었다. 서약서 한 장으로 끝낼 게 아니라 실제 설치·가동 여부까지 확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둘째, 환적 경로다. 인도네시아·일본·홍콩처럼 제3국을 거치는 물류가 통제를 흐리는 통로였다. 최종 목적지가 규제 대상국으로 바뀌지 않는지 유통 단계별로 추적할 필요가 있다.
셋째, 화이트리스트와 문서의 진위다. 신뢰 명단에 오른 업체와 정상적으로 보이는 서류가 오히려 우회의 도구였다. 거래 상대가 명단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제재는 결국 '누구에게 팔았나'가 아니라 '그 물건이 어디까지 갔나'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