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9월 17일 담화에서 IAEA의 비핵화 촉구를 잡소리라 일축하며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어떤 대화가 열리더라도 비핵화를 전제로는 응하지 않겠다는 선을 미리 그은 것으로, 협상의 출발점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읽힌다. 미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아 대화 여지도 읽히는 만큼, 미국의 대화 추진 움직임과 우리 정부의 대응을 함께 지켜봐야 한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026년 9월 17일 담화를 내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비핵화 촉구를 "귀에 익은 잡소리", "자동응답기에서 밤낮 울려 나오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같은 담화에서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보유국 지위는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며 핵 지위가 물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영구 고착됐다고 주장했다.
거친 표현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담화의 핵심은 수사가 아니라 그 아래 깔린 메시지다. 비핵화를 논의 대상에서 아예 빼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Earth Photart
담화는 제70차 IAEA 총회가 진행되는 시점에 나왔다. IAEA는 이번 총회에서 북한의 핵 활동을 지적했는데, 영변의 제2우라늄농축시설이 원심분리기 28세트 규모이고 강선 시설도 확장 중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총회의 비핵화 결의가 채택되기 전에 미리 담화를 낸 것은 결의의 무게를 사전에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읽힌다. "아무리 비핵화를 열창해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문장이 그 태도를 압축한다.
북한이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이번 담화는 그 지위를 '불가역', '영구 고착'이라는 표현으로 못 박았다는 점에서 수위가 높다.
이 주장이 겨냥하는 것은 협상의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국제사회는 비핵화를 대화의 목표로 놓아 왔다. 북한은 그 전제를 거부하고, 핵보유국 인정을 오히려 대화의 입장권으로 요구하는 쪽으로 판을 바꾸려 한다. 목표였던 것을 조건으로 뒤집는 셈이다.
한국 독자에게 이 변화가 남 일이 아닌 이유는 분명하다. 대화의 목표가 '핵 없는 한반도'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리'로 미끄러지면, 우리 안보 환경의 전제 자체가 달라진다. 지위를 인정받는 순간부터 협상 테이블의 무게추가 북한 쪽으로 기운다.
주목할 대목은 담화가 미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난의 화살은 IAEA와 '서방'을 향했고, 정작 미국은 거명되지 않았다. 같은 시기 김강일 국방성 부상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핵동맹'으로 규정하며 날을 세운 것과는 대비된다. 강온 역할을 나눈 메시지로 볼 수 있다.
통일부 김남중 차관은 이 담화를 두고 "북미 간 간접 대화"라고 평가하며, 북한이 "사실상 직접적인 대화를 위한 의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양무진 교수 등 전문가들도 북미대화를 앞두고 핵보유국 인정을 선결 조건으로 압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리하면 "대화는 하되 비핵화는 빼자"는 조건을 먼저 던진 셈이다.
관건은 미국이 이 조건을 어떻게 받느냐다. 미국이 비핵화를 잠시 접어 두고 핵 동결이나 군축식 접근으로 방향을 튼다면 협상의 목표 자체가 달라진다. 반대로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면 대화는 문턱에서 멈출 수 있다.
우리 정부로서는 비핵화라는 원칙과 남북·북미 대화 재개라는 현실 사이에서 위치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북한의 다음 메시지와 미국의 응답, 그리고 한국 정부의 조율이 맞물리는 다음 몇 달이 이 담화의 실제 무게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