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전환사채로 투자한 특수목적법인이 도시바를 제치고 일본 키옥시아의 지분율 최대주주(약 14.2%)가 됐다. 최대주주라도 경영에 곧바로 참여할 수는 없고,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의결권을 가지려면 각국 경쟁당국 심사와 일본 정부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2028년까지 의결권 15% 초과 금지 같은 제약이 걸려 있어 실제 지배력 확대 여부는 심사 결과와 SK의 전환 결정에 달렸다.

SK하이닉스가 일본 낸드플래시 기업 키옥시아의 사실상 최대주주가 됐다. 정확히는 SK하이닉스가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한 특수목적법인(SPC)이 지분 약 14.2%로, 오랜 대주주였던 도시바를 근소하게 앞질렀다.
자리가 바뀐 배경은 SK의 신규 매입이 아니라 도시바의 매각이다. 도시바는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까지 키옥시아 주식 543만여 주를 장내에서 팔았고, 지분율이 14%대 초반까지 내려오면서 최대주주 순번이 뒤집혔다. 앞 순위가 물러난 결과라는 점이 이 뉴스의 성격을 규정한다.

Tima Miroshnichenko
헷갈리기 쉬운 대목이다. 최대주주가 됐다고 곧바로 이사회에 들어가거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이유가 겹친다.
첫째, SK가 쥔 것은 아직 주식이 아니라 전환사채다.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야 비로소 의결권이 생긴다. 둘째, 그 전환 자체에 조건이 붙어 있다. 회사 측이 '신중한 입장'으로 알려진 것도 지금 당장 전환을 서두를 이유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키옥시아와 얽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베인캐피털이 주도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메모리(키옥시아 전신)를 약 2조엔에 인수할 때 SK하이닉스도 4조원가량을 댔다. 이때 SK는 경쟁사를 직접 지배하는 모양을 피하려고, 의결권을 갖는 대신 나중에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전환사채를 받는 구조로 참여했다.
지금의 '주식 아닌 채권'은 그 설계의 연장선이다. 이번에 최대주주가 된 특수목적법인 역시 SK의 전환사채가 걸려 있는 곳이다. 처음부터 영향력은 확보하되 직접 지배는 미뤄두는 선에서 짜였다는 점을 알면, 최대주주 등극이 왜 곧바로 경영권으로 이어지지 않는지가 분명해진다.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바꿔 실질 지배력을 가지려면 주요국 경쟁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낸드 시장의 상위 업체가 또 다른 상위 업체에 영향력을 넓히는 구도라, 한국·미국·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독과점 심사가 걸릴 수 있다.
제약도 명시돼 있다. 알려진 조건으로는 2028년까지 의결권 지분율 15% 초과 금지, 이사 선임과 기밀정보 접근 제한 등이 있다. 지금 구조에서 SK는 '가장 많이 넣은 투자자'이되, 경영을 좌우하는 주주와는 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상징성은 작지 않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에 이은 세계 2위권 낸드 기업이고, 키옥시아는 일본을 대표하는 낸드 업체다. 한국 기업이 일본 핵심 반도체 회사의 최대주주 명단 맨 위에 오른 것 자체가 산업 지형의 변화 신호로 읽힌다.
다만 확정된 것과 가능성은 구분해야 한다. 지금 확정된 사실은 지분 순위 변경뿐이다. 이것이 낸드 재편으로 이어질지는 각국 심사 통과, SK의 전환 결정, 일본 정부의 태도라는 세 변수에 달렸다. 세 가지가 모두 풀려야 SK가 의결권을 쥔 주주로 올라선다. 당장의 경영권 이동으로 해석하기에는 이르고, 앞으로 나올 기업결합 심사 관련 발표가 방향을 가늠할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