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조지아 현대차 공장에서 구금됐던 한국인 300여 명이 미국 연방정부 9개 기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절차에 들어갔다. 이들이 먼저 택한 것은 정식 소송이 아니라 연방불법행위청구법(FTCA)에 따른 행정청구다. 정부가 6개월 안에 응답하지 않거나 배상을 거부하면 그때 연방법원 소송으로 넘어간다.

2025년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 엘러벨의 현대차 메타플랜트 건설 현장에 이민단속이 들이닥쳤다. 이곳은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함께 짓던 배터리 공장 부지다. 이날 붙잡힌 사람은 약 475명, 이 가운데 대부분인 300여 명이 한국인 근로자였다.
구금 과정이 논란을 키웠다. 근로자들은 손목과 발목에 수갑과 족쇄가 채워진 채 버스에 실려 포크스턴의 이민세관단속국(ICE) 구금시설로 옮겨졌고, 약 7일간 갇혀 있었다. 당사자들은 적절한 설명 없이 절차가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법적으로 가장 민감한 대목은 영장이다. 당시 수색영장에 단속 대상으로 적힌 사람은 4명뿐이었고, 그중 한국인은 한 명도 없었다. 영장에 없던 사람들이 대거 구금됐다는 점이 이번 청구의 핵심 근거가 된다.

Airam Dato-on
구금됐던 한국인들은 국토안보부, ICE, 관세국경보호국, FBI, 법무부, 노동부 등 9개 연방기관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런데 이들이 낸 것은 법원 소장이 아니라 '행정청구'다.
미국에서 연방정부의 잘못으로 피해를 봤다면 곧바로 정부를 제소할 수 없다. 연방불법행위청구법(FTCA)이 먼저 해당 기관에 행정청구를 넣도록 정해놨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구체적인 배상 액수를 제시하면, 정부가 이를 검토해 합의할지 판단하는 단계다.
소송의 앞 관문이자 의무 절차인 셈이다. 이 단계를 건너뛰고 낸 소송은 각하될 수 있다. 첫 청구인으로 알려진 김씨는 불법 감금과 절차 남용, 고의적인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압수된 소지품, 일하지 못한 손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다. 대리인 측은 올해 말까지 300여 명의 청구 접수를 마칠 계획이다.
행정청구가 곧 소송은 아니다. 연방법원으로 가려면 조건이 따로 있다.
기관이 청구를 접수하면 검토할 기간이 주어진다. 정부가 배상을 거부하거나, 접수 뒤 6개월이 지나도록 답을 내놓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피해자가 연방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다. 반대로 이 기간에 합의가 이뤄지면 소송 없이 마무리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 소송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배상 액수도 변수다. FTCA에서는 행정청구 때 제시한 금액이 이후 소송에서도 기준선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이들이 요구한 총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진행 상황을 이해하려면 몇 가지를 나눠 보면 된다.
첫째는 접수 규모다. 대리인이 예고한 대로 연말까지 300여 명의 청구가 실제로 모두 접수되는지가 1차 관문이다. 둘째는 정부의 반응이다. 각 기관이 배상에 응하는지, 거부하는지, 아니면 6개월을 넘겨 무응답으로 두는지에 따라 소송 여부가 갈린다. 셋째는 영장 쟁점이다. 영장에 없던 사람들을 구금한 부분이 위법으로 인정되는지가 배상 논의의 무게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소송이 아니라 소송으로 가기 위한 앞 단계라는 점을 기억하면, 앞으로 나올 소식을 헷갈리지 않고 따라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