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페르시아만 해협청이 호르무즈 통항 규정 위반을 이유로 장금상선 선박 5척을 포함한 45척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국이 이란 거래 자체를 끊으려 해운까지 겨냥한 2차 제재를 내놓은 시점과 겹치면서, 한국 선사는 두 규칙 사이에 낀 형국이 됐다. 국내 원유 수급에 당장 차질이 생길지는 실제 억류 사례와 운임 지표로 확인해야 한다.

이란 페르시아만 해협청(PGSA)은 8월 23~24일 호르무즈 해협 통항 규정을 위반했다며 선박 45척을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 안에 한국 장금상선(Sinokor) 소유 선박 5척이 포함됐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과 LNG·LPG선, 석유제품 운반선이 뒤섞여 있다.
문제는 이란이 구체적인 위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항행을 문제 삼았는지 알 수 없으니, 선사 입장에서는 무엇을 고쳐야 블랙리스트에서 빠지는지도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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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에 미국도 움직였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8월 24일 디지털자산·기술·금·항공·해운 5개 부문에서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을 겨냥한 2차 제재를 발표하고, 전 세계 약 60개 단체·개인·선박을 지정했다. 재무부는 이란의 자금줄을 완전히 막겠다며 '누출 제로(zero leakage)'라는 표현을 썼다.
두 조치의 방향은 반대다. 미국은 이란과 얽히는 것 자체를 끊으라고 압박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통항을 지렛대 삼아 자국 규정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배 한 척이 미국 기준에 맞추면 이란 규정에 걸리고, 이란 요구를 들으면 미국 제재망에 노출될 수 있는 구조다.
이란이 이번 블랙리스트를 걸프 산유국의 '셔틀 운송' 견제 차원으로 활용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통항 위험을 줄이려는 우회 물류 자체를 압박 수단으로 삼는 셈이다.
이번 조치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확산 경로다. 이란은 블랙리스트 선박과 해상환적(STS) 작업을 한 선박도 추가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화주에게는 용선 전에 해당 선박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됐는지 확인하라고 요구했다.
직접 지정된 5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화물을 옮겨 싣는 과정에서 얽히면 지정되지 않은 배까지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미국 역시 이번 2차 제재에서 해운을 5개 부문 중 하나로 콕 집었다. 이란과 이란을 상대하는 제3국 선박 양쪽에서 압박이 들어오는 만큼, 선사와 화주는 개별 항차마다 어느 규칙에 걸리는지를 따로 계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한국이 들여오는 원유의 약 95%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통로 하나에 대한 의존도가 이렇게 높다는 점이 이번 사안을 남의 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다만 블랙리스트가 곧바로 수급 차질로 이어졌다는 근거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흔히 인용되는 '해상운임 50~80% 상승, 운송 기간 3~5일 증가, 보험료 최대 7배'라는 수치는 해협이 봉쇄됐을 때를 가정한 시나리오다. 현재 벌어진 사실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를 그린 추정이다.
그래서 지금 판단이 이르다면, 확인할 지점을 정해두는 편이 낫다. 첫째, 블랙리스트 선박이 실제로 억류되거나 벌금을 문 사례가 나오는지. 둘째, 중동 항로 운임과 전쟁위험 보험료 지표가 움직이는지. 셋째, 정부와 선사가 대체 항로나 통항 자제 같은 구체적 대응에 나서는지다. 이 세 가지가 조용하면 아직은 경고 단계, 하나라도 움직이면 그때부터 수급 이야기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