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이 2026년 9월 16일 북한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배상금 446억여원 전액을 물어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 스스로 집행을 강제할 수단이 없다고 밝혀 실제로 돈을 받아낼 길은 사실상 막혀 있다. 앞선 국군포로 판결과 경문협 저작권료 추심 사례가 이런 판결이 선례로 어떻게 쓰일지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김형철)는 2026년 9월 16일 북한이 대한민국 정부에 446억2641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부가 청구한 금액이 한 푼도 깎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2020년 6월 북한의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재산권 침해인 동시에 판문점 선언 등 남북 합의를 정면으로 어긴 행위로 봤다.
연락사무소는 2018년 판문점 선언에 따라 그해 9월 문을 열었다. 남북이 상시로 소통할 창구를 만든 상징적 건물이었다. 북한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2020년 6월 이 건물을 일방적으로 폭파했고, 정부가 들인 건축비 등이 고스란히 손해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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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자체는 2023년 6월에 시작됐다. 정부가 소를 낸 데는 실용적인 이유가 있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3년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하는데, 2020년 폭파 시점부터 따지면 권리가 사라질 상황이었다. 시효를 중단시키려 일단 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가 이번에 나왔다.
이 소송은 처음부터 돈을 당장 받아내는 것보다 청구할 권리 자체를 살려 두는 데 무게가 실려 있었다. 배상액을 전액 인정받은 것과 그 돈이 실제로 오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재판부는 판결과 동시에 한계를 분명히 했다. "북한에 손해배상 이행을 강제할 수단은 없는 상황"이라고 명시한 것이다. 상대가 한국 법원의 판결을 따를 의무를 인정하지 않고, 국내에서 압류할 자산도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판결의 성격을 규정한다. 법적으로는 완승이지만 집행이라는 마지막 단계가 비어 있다. 결국 북한의 책임을 국가 문서로 확정했다는 상징적 의미에 머문다.
그렇다고 판결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배상 책임을 사법부가 명시적으로 확정해 두면, 훗날 남북 관계가 바뀌거나 북한 자산이 새로 확인될 때 곧바로 집행을 시도할 근거가 남는다. 청구 권리를 확정판결로 붙잡아 두는 것과 시효로 날려 버리는 것은 협상 테이블에서 무게가 다르다. 문제는 그 '언젠가'가 언제 올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비슷한 판결이 처음은 아니다. 2020년 7월 같은 법원은 국군포로 2명에게 북한이 4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국 법원이 북한에 대한 재판권을 인정하고 배상을 명시한 첫 사례였지만, 이 판결도 집행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관건은 압류할 대북 자산이 있느냐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보관 중인 북한 저작권료가 20억원 넘게 쌓여 있어 이를 배상금으로 추심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돈을 추심 대상으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으로 소송이 이어지더라도 실제 회수 여부는 이런 자산에 대한 법원 판단이 달라지느냐에 달려 있다.
독자가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다. 판결이 확정돼 시효가 다시 살아나는지, 정부가 추가로 어떤 대북 채권을 확보하는지, 경문협 저작권료 같은 자산의 추심 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바뀌는지다. 이 조건이 움직이지 않는 한 446억이라는 숫자는 장부상의 권리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