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은 9월 16일 2020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해 북한이 정부에 446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정부가 원고로 북한을 제소해 이긴 첫 사례지만, 배상금을 실제로 받아낼 강제집행 수단은 사실상 없다. 대법원에 걸린 국군포로 저작권료 추심 사건의 결론과 정부의 추가 소송 여부가 이 판결의 실효성을 가를 지점이다.
9월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46부(재판장 김형철)는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북한이 446억2641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20년 6월 북한이 개성공단 안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데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배상액보다 원고 자리다. 그동안 북한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국군포로나 납북 피해자 같은 개인이 냈다. 정부가 직접 원고가 되어 북한을 제소하고 승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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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실무적 이유는 시효다.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은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통일부는 연락사무소 폭파에 대한 청구권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2023년 6월 소장을 접수했다. 폭파 시점으로부터 3년이 되기 직전이었다.
접수 뒤 판결까지는 3년 넘게 걸렸다. 북한이 소송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고가 나오지 않으면 법원은 원고 주장을 바탕으로 판단하는데, 이번 판결도 북한의 반론 없이 나온 1심이다. 북한이 항소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그대로 확정될 공산이 크다.
판결문에 적힌 446억원을 실제로 받아낼 수단은 마땅치 않다. 북한 재산에 강제집행을 걸 통로가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 잡아둘 만한 북한 자산이 거의 없고, 있어도 남북관계라는 특수성 탓에 집행이 간단치 않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대상이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보관 중인 북한 저작권료다. 북한 방송·출판물을 국내에서 쓰는 대가로 쌓인 돈으로, 2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공탁금을 배상금 회수에 쓰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앞선 사건에서 법원이 그 성격을 두고 엇갈린 결론을 냈던 전례가 있다.
개인들이 먼저 걸어간 길을 보면 이번 판결의 한계가 드러난다. 2020년 7월 국군포로 한재복·노사홍씨는 강제노역 등을 이유로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겼다. 한국 법원이 북한과 김정은에게 직접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었지만, 인정된 금액은 두 사람 합쳐 4200만원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국군포로 측은 경문협에 쌓인 북한 저작권료를 받아 배상금을 회수하려 추심 소송을 냈지만, 2022년 1심은 "저작권료가 김정은 개인의 재산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추심 사건은 대법원에서 2년 넘게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판결을 받아도 돈으로 잇는 마지막 단계에서 번번이 막혀 온 셈이다.
이번 판결은 돈보다 기록에 가깝다. 북한의 특정 행위를 불법으로 못 박고, 정부가 직접 그 책임을 법정에서 확인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남는다. 앞으로 유사한 도발이 있을 때 정부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할 근거가 생겼다.
세 가지를 눈여겨볼 만하다. 첫째, 대법원에 걸린 국군포로 저작권료 추심 사건의 결론이다. 여기서 "북한 자산에 집행할 수 있다"는 판단이 나오면 이번 446억원 판결에도 회수 통로가 열린다. 둘째, 정부가 다른 도발 사안까지 소송 대상을 넓힐지다. 소멸시효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청구권을 계속 살려 둘 수 있다. 셋째, 남북관계 신호다. 정부가 북한을 협상 상대가 아니라 피고로 세운 국면이 당분간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집행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 판결을 형식적이라 보긴 어렵다. 받아낼 수 없는 판결이라도, 책임의 소재를 공식 문서로 남겨 두는 것은 다음 국면에서 쓸 카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