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비자물가 둔화는 연준의 긴축 우려를 낮춰 달러 약세와 원화 강세, 나아가 외국인 자금 유입과 코스피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경로다. 이번 국면에서는 물가 둔화에서 원화 강세까지는 작동했지만, 코스피가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오른 뒤 외국인이 순매도로 돌아서며 마지막 고리가 끊겼다. 한국 투자자는 이어지는 물가 지표 확인과 외국인 매수 전환 여부를 함께 지켜봐야 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예상보다 둔화됐다는 소식이 나오면, 서울 증시와 원/달러 환율이 곧바로 반응한다. 미국 물가가 식으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를 더 올릴 필요가 줄고, 오히려 인하로 방향을 틀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기대의 변화가 달러 가치와 글로벌 자금 흐름을 흔들고, 그 파장이 한국 시장까지 이어진다.
문제는 이 연결 고리가 늘 교과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번 CPI 둔화가 실제로 한국 증시와 환율의 어느 단계까지 영향을 미쳤는지 순서대로 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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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경로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CPI 둔화는 연준의 통화정책 기대를 바꾼다. 물가가 잡히면 추가 긴축 우려가 후퇴하고, 시장은 금리 인하 시점을 앞당겨 반영하기 시작한다. 다만 이번 국면에서 9월 연준 회의를 두고 시장이 반영하는 확률은 출처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인하가 기정사실이라기보다, 추가 인상 우려가 걷히는 쪽에 무게가 실린 정도로 보는 것이 안전하다.
둘째, 금리 기대는 달러 가치로 이어진다. 금리를 더 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약해지면 달러는 매력이 줄어 약세로 돈다. 실제로 달러 지수는 최근 약세 흐름을 보였다.
셋째, 달러가 약해지면 원/달러 환율은 내려간다. 즉 원화가 강세를 띤다. 여기에 한국의 반도체 수출 급증 같은 자체 요인이 겹치면서, 원화는 최근 10개월 사이 가장 강한 수준까지 회복됐다. 지난해 말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았던 고환율 국면과 비교하면 뚜렷한 변화다.
넷째, 통상 원화가 강세로 돌면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들어와 코스피를 밀어 올린다. 원화가 오를 때 한국 주식을 사두면 주가 상승분에 환차익까지 더해지기 때문이다.
다섯째, 그 결과 코스피가 상승 압력을 받는다. 이것이 "미국 물가 둔화 → 한국 증시 강세"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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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이번에 이 경로가 중간에서 한 번 끊겼다는 것이다. 앞의 세 단계, 즉 물가 둔화에서 달러 약세, 원화 강세까지는 대체로 작동했다. 그런데 네 번째 단계인 외국인 자금 유입은 예상과 반대로 움직였다. 원화가 강세인데도 외국인은 8월 들어 코스피에서 대규모 순매도를 이어갔다.
이유는 환율 밖에 있다. 코스피가 이미 사상 최고 수준까지 급등한 뒤라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졌고, 그동안 지수를 끌어올린 반도체 대형주에서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온 것이다. 환율이라는 우호적 신호와 주식 수급이라는 비우호적 신호가 따로 노는 이른바 디커플링 국면이다.
결국 이번 CPI 결과는 경로의 전반부까지만 힘을 발휘했고, 마지막 고리인 외국인 복귀와 코스피 추가 상승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단계에 있다.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지금 지켜봐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어지는 미국 물가 지표가 둔화 흐름을 확인시켜 주는지, 다른 하나는 외국인이 반도체 수출 호조 등을 계기로 매도세를 멈추고 돌아오는지다. 이 두 조건이 맞물릴 때 비로소 끊겼던 마지막 고리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