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14세 교황이 9월 25~28일 2008년 이후 18년 만에 프랑스를 공식 방문해 콩코르드 미사에 약 80만 명이 운집했다. 낙태·조력사망을 잇따라 법제화하고 성학대 신뢰 위기를 겪는 프랑스에서, 마크롱은 회담엔 나왔지만 정교분리 원칙에 따라 미사엔 불참했다. 이번 방문이 흐름을 바꿨는지, 아니면 세속화된 유럽에서 교회가 다시 말을 거는 시험대였는지 그 무게를 가늠해볼 만하다.
교황이 프랑스 땅을 밟은 것은 2008년 베네딕토 16세 이후 18년 만이다. 레오 14세는 9월 25일부터 28일까지 파리와 루르드, 메츠를 도는 일정을 소화했다. 방문의 공식 모토는 "세상이 생명을 얻도록"이었다.
시점이 우연은 아니다. 프랑스 교회는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다. 2021년 조사에서 지난 70년간 성직자 등에 의한 미성년자 성학대 피해자가 약 33만 명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다. 동시에 프랑스는 2024년 헌법에 낙태의 자유를 명시했고, 2026년 여름에는 조력사망을 법으로 허용했다. 가톨릭 교리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정책이 잇따라 나온 나라에, 교황이 직접 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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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라이시테'라 불리는 엄격한 정교분리 원칙을 지킨다. 1905년 정교분리법에서 출발한 이 원칙은 공공 영역에서 종교의 우위와 표식을 제한한다. 국가가 특정 종교를 편들지 않는다는 공화국의 기본 이념이라, 정치 지도자가 종교 행사에 공식적으로 나서는 일 자체가 조심스럽다.
이번 방문에서도 그 결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크롱 대통령은 25일 엘리제궁에서 교황과 회담했지만, 26일 콩코르드 광장에서 열린 야외 미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가 원수로서는 맞이하되, 종교 의식에는 거리를 두는 것이 라이시테의 실제 작동 방식이다. 대통령 부인 브리지트 여사는 미사에 참석했다.
역설은 그 세속의 심장부에서 벌어졌다. 사전 등록은 60만 명이었지만 바티칸은 실제 참석 인원을 약 80만 명으로 추산했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샹젤리제로 이어지는 약 2km 구간을 카퍼레이드가 지났다.
교황의 발언은 프랑스의 현안을 겨눴다. 루르드에서는 조력사망 합법화 흐름을 두고 "가짜 연민"이라 부르며, 합법이 곧 도덕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조력사망을 막 법제화한 나라에서 나온 말이라 무게가 달랐다. 유네스코 연설에서는 인공지능을 겨냥해 "기계의 낙원에서 우리의 인간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민자와 소외된 이들의 존엄, 핵 군비 경쟁의 위험, 유럽의 평화와 통합도 반복해서 언급했다. 루르드에서는 성직자 성학대 피해자들을 직접 만났다.
발언을 관통하는 축은 '생명'이다. 낙태와 조력사망 같은 제도 논쟁, AI가 바꾸는 인간의 조건, 전쟁과 이민 문제를 하나의 잣대로 묶어 말한 셈이다. 여기서 사실과 해석을 나눠 보면, 교황이 특정 법을 뒤집을 힘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법제화가 끝난 사안을 다시 공론장으로 끌어냈다는 점은 남는다.
이번 방문의 의미는 동원 규모가 아니라 위치에 있다. 신자가 줄고 성학대 상처가 깊은 서유럽, 그중에서도 세속주의가 가장 단단한 프랑스에서 80만이 모였다는 사실은 교회의 사회적 공명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흐름이 뒤집혔다고 보기는 이르다. 조력사망법은 그대로 있고, 라이시테 원칙도 변하지 않는다. 이번 방문을 '부활'로 읽으면 과장이고, '의례적 행사'로 읽으면 과소평가다. 세속화된 유럽에서 교회가 어떤 언어로 계속 말을 걸 것인가를 가늠하는 시험대였다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메츠에서 열린 '유럽의 뿌리로' 회의가 평화와 통합을 앞세운 것도, 교회가 스스로를 유럽 통합의 도덕적 언어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로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