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핵심광물 원탁회의에서 고려아연의 74억 달러 규모 테네시 제련 프로젝트를 미국 공급망 재건의 대표 사례로 지목했다. 이 프로젝트는 갈륨·게르마늄·안티모니 등 중국이 대미 수출을 막은 광물을 미국 본토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미 국방부와 상무부가 지분과 자금으로 직접 참여한다. 미국이 중국 의존을 낮추려는 공급망 재편에서 한국 기업을 '제련·정제' 파트너로 끌어들이는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2026년 8월 초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광업계 원탁회의가 열렸다. 여러 외신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미 정부는 약 30억 달러 규모의 핵심광물·광업 투자 패키지를 발표했고, 국방·내무·상무 등 주요 각료와 200명 가까운 업계·정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주목받은 대목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의 발언이었다. 그는 미국이 어떻게 세계적 산업 시설을 자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한국 기업 고려아연이 추진하는 테네시주 제련 프로젝트를 직접 거명했다. 러트닉 장관은 "우리는 여기서 채굴하고, 여기서 가공·정제하고, 여기서 제조할 것"이라며 광물을 국가 안보 문제로 규정했다. 미국 상무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특정 한국 기업을 성공 모델로 꼽은 셈이라, 이 소식이 전해진 뒤 고려아연 주가는 하루 만에 두 자릿수 급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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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트닉 장관이 언급한 사업은 고려아연이 테네시주 클라크스빌(몽고메리 카운티)에 세우는 통합 비철금속 제련·정제 시설로, 사업명은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이다. 투자 규모는 약 74억 달러로, 2025년 12월 최초 발표 당시 66억 달러 안팎이던 계획이 확대됐다.
이 시설은 아연·납·구리·은 같은 전통 비철금속과 함께 반도체급 황산을 생산하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미국 정부가 지정한 핵심광물이다. 고려아연은 이곳에서 12종의 비철금속을 뽑아낼 계획이며 이 중 11종이 미국 지정 핵심광물이다. 그 안에는 반도체·국방·통신에 쓰이는 갈륨, 게르마늄, 인듐, 안티모니가 포함된다. 여러 금속을 하나의 공정에서 회수하는 통합제련 기술과 온산제련소에서 쌓은 노하우가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미국 정부는 이 사업을 대형 인프라 인허가를 빠르게 처리하는 'FAST-41' 대상으로 지정했는데, 한국 주도 사업이 이 제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상무부의 반도체법(CHIPS Act) 지원도 더해졌고, 상업 가동은 2029년으로 예정돼 있다.

Tima Miroshnichenko
미국이 이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는 배경에는 중국의 수출 통제가 있다. 중국은 2024년 12월 갈륨·게르마늄·안티모니의 대미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맞선 보복 조치였는데, 이후 대미 안티모니 선적이 사실상 끊길 만큼 파장이 컸다.
문제는 미국이 이들 광물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해 왔고, 안티모니는 자국 내 생산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태양광·통신에, 안티모니는 야간투시경·적외선 센서·특수 탄약 등 국방 분야에 필수적이다. 즉 중국이 밸브를 잠그면 미국의 첨단산업과 무기 생산이 곧바로 타격을 받는 구조다. 러트닉 장관이 이를 "경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 문제"라고 못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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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공급망 재편 전략은 단순히 광산을 더 파는 데 있지 않다. 광석을 금속으로 바꾸는 '제련·정제' 단계를 중국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이 중간 공정을 자국 안으로 들여오려 한다. 여기서 세계 최대 아연 제련업체이자 부산물에서 희소금속을 뽑아내는 기술을 가진 고려아연이 최적의 파트너로 지목된 것이다.
미 정부의 개입 방식도 이례적으로 깊다. 보도에 따르면 국방부는 테네시 합작법인 지분 40%를 갖고, 미 정부와 전략적 투자자들은 약 19억 달러 규모의 고려아연 신주를 인수해 회사 지분 약 10%를 확보하는 구조가 논의됐다. 자금 지원을 넘어 지분으로 직접 엮이는 방식인 셈이다. 그 대가로 미국은 고려아연의 확대되는 생산능력에 우선 접근할 권리를 갖게 된다.
이 사업은 한미 협력을 전통 제조업을 넘어 핵심광물 공급망으로 넓히는 상징적 사례다. 다만 짚어둘 지점도 있다. 미 정부가 고려아연 지분 일부를 갖는 구조는 경영권·의사결정에 외국 정부의 입김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또 원료 조달을 북미 중심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비용과 채산성 부담이 따를 수 있다.
한편 세부 일정과 수치는 발표 시점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원탁회의 개최 시점을 일부 국내 매체가 '7일'로 전한 반면 다른 보도는 8월 9~10일 발표로 다뤘고, 투자 규모도 66억 달러에서 74억 달러로 조정된 이력이 있다. 확정된 계약 조건은 향후 이사회 의결과 정부 발표를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중국 의존을 끊기 위한 공급망 재편의 한 축을 한국 기업에 맡기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