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하지 않고 내각총리대신 명의로 공물료만 봉납했다. 참배 대신 봉납은 아베 이후 이어진 관행이자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하려는 절제이지만, 같은 날 방위상과 자민당 지도부는 이례적으로 집단 참배했다. 총리의 절제가 각료·당 지도부의 참배, 연말 안보문서 개정 국면에서 얼마나 유지될지 한국 정부의 대응 수위와 함께 지켜볼 지점이다.
광복절이자 일본의 종전 81주년인 8월 15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찾지 않았다. 대신 '내각총리대신 다카이치 사나에' 명의로 공물료를 사비로 봉납했다. 참배라는 눈에 띄는 행위는 피하고, 봉납이라는 조용한 형식만 남긴 선택이다.
같은 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신사를 참배했고,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 등 자민당 핵심 간부들도 집단으로 참배했다. 총리 한 사람의 절제와 내각·당 지도부의 행보가 정반대로 갈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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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그래서 현직 총리가 경내에 들어가 참배하면 한국과 중국은 이를 과거사에 대한 태도 표명으로 받아들인다. 공물료 봉납은 이름만 올리고 직접 발걸음은 하지 않는 방식이라, 국내 보수층을 향한 성의 표시와 대외 관계 관리를 동시에 노린 절충으로 통한다.
다만 다카이치가 공물을 낸 명의가 개인이 아니라 '내각총리대신'이었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사적 신앙이 아니라 총리라는 공적 지위를 드러낸 셈이어서, 봉납이 곧 무해한 행위인 것은 아니다.
현직 총리가 야스쿠니를 직접 참배한 마지막 사례는 2013년 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다. 당시 미국까지 '실망'을 표하며 파장이 커지자, 이후 총리들은 참배 대신 공물 봉납으로 수위를 낮춰 왔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는 재임 3년 내내 참배하지 않고 공물만 냈고,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도 같은 방식을 택했다.
이 흐름에서 보면 다카이치의 이번 선택은 새로운 파격이 아니라 12년째 이어진 관행의 연장이다. 총리가 참배하지 않은 것 자체는 놀라운 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
정작 눈여겨볼 대목은 다카이치 개인의 이력이다. 그는 의원과 각료 시절 8월 15일마다 야스쿠니를 참배해 온 대표적 강경 보수였다. 그런 인물이 총리가 되자 참배를 멈췄다는 점에서, 이번 절제는 신념의 변화라기보다 자리에 따른 계산으로 읽힌다.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은 그가 개선 국면에 있는 한일관계와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구마모토 강진 수습에 집중한다는 명분도 함께 내세웠다. 취임 후 첫 정기 제사였던 4월 춘계예대제 때 이미 참배 대신 공물을 봉납하며 이 노선을 예고한 바 있다.
총리가 몸을 사린 자리를 내각과 당이 채웠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신사를 참배했는데, 현직 방위상이 종전일에 참배한 것은 2024년 기하라 방위상 이후다. 안보를 책임지는 각료의 참배는 총리의 봉납과는 결이 다른 신호를 준다.
자민당에서는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 아리무라 하루코 총무회장, 니시무라 야스토시 선거대책위원장 등 지도부가 나란히 참배했다. 당 핵심 간부들이 집단으로 신사를 찾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연말 안보 관련 문서 개정을 앞두고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행보라는 해석이 붙는다.
정리하면 총리는 대외 관계를, 당과 각료는 지지층을 각각 챙기는 역할 분담에 가깝다. 총리 개인의 자제만으로 일본 정부 전체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 외교부는 그동안 일본 각료의 참배와 총리의 공물 봉납에 대해 매년 '깊은 실망과 유감'을 담은 대변인 논평을 내왔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수위의 반응이 나오는지가 1차 관전 포인트다.
한일관계의 온도를 가늠하려면 세 가지를 함께 보는 편이 정확하다. 첫째, 총리의 봉납 노선이 봄·가을 예대제와 내년까지 유지되는지. 둘째, 연말 안보문서 개정 국면에서 참배파 당 지도부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커지는지. 셋째, 한국 정부의 논평 수위가 개선 흐름을 흔드는 선까지 가는지다. 당장 행동으로 옮길 일이 있는 뉴스는 아니지만, 총리의 봉납보다 각료·당 지도부의 참배와 한국 정부의 대응을 함께 봐야 실제 기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