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던 A씨(43)가 북한 공작원의 지령으로 탈북민·현역 장교 정보를 수집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대가 6억6000만원부터 흥신소 경비 250만원까지 돈이 오간 모든 단계가 가상화폐였다. 코인은 지갑 주소가 실명 계좌에 직접 묶이지 않고 중개기관 없이 국경을 넘어 이체돼, 은행 송금보다 자금 추적이 구조적으로 어렵다. 다만 '추적 회피 목적'은 재판부가 명시한 판단이라기보다 코인 특성과 사건 구조에서 나오는 추론이라는 점은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조순표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상 간첩 등 혐의로 기소된 A씨(43)에게 1심에서 징역 5년과 자격정지 5년을 선고했다. 가상자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던 A씨는 2021년 5~6월 텔레그램으로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반북 성향 탈북민의 인적사항과 활동을 파악한 혐의를 받는다.
핵심은 대가가 오간 방식이다. A씨는 '가상자산 투자 운영자금' 명목으로 약 6억6000만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받았다. 은행 송금이 아니라 지갑으로 들어온 돈이다.
수법도 코인을 축으로 짜였다. A씨는 한 탈북민 단체 대표에게 후원하고 싶다며 접근해 가상화폐 지갑을 만들게 한 뒤, 그 지갑 주소를 공작원에게 넘겼다. 공작원이 100만원 상당 비트코인을 후원금 명목으로 보내자, A씨는 이를 빌미로 대북전단 살포 행사의 영상과 사진을 받아냈다.
현역 군인 쪽도 마찬가지다. 2021년 7월 A씨는 장교 7명의 이름·소속부대·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해 포섭하라는 지령을 받았고, 이 가운데 대위 1명의 SNS에 접속해 사진을 확보했다. 미행은 흥신소에 맡겼는데, 그 비용 250만원도 비트코인으로 냈다. 흥신소는 대위의 소속 부대와 관사, 거주 호실, 일정과 동향까지 파악해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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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대가 6억6000만원, 후원 미끼 100만원, 흥신소 경비 250만원까지 돈이 움직인 모든 단계가 가상화폐였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가상화폐가 자금 추적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코인 자체의 성질에 있다. 은행 송금은 계좌가 실명에 묶여 있고, 송금할 때마다 은행이라는 중개기관을 거친다. 반면 코인 지갑 주소는 은행 계좌처럼 실명 확인 절차에 직접 연결되지 않고, 개인 간 이체는 중개기관의 확인 없이 바로 이뤄진다. 국경도 사실상 없어, 해외에 있는 공작원이 국내로 즉시 자금을 보낼 수 있다.
여기서 사실과 해석을 나눠 볼 필요가 있다. '북한이 추적을 피하려고 일부러 코인을 썼다'는 것은 재판부가 못 박은 판단이라기보다, 코인의 이런 특성과 사건 구조에서 나오는 합리적 추론이다. 다만 지령은 텔레그램, 자금은 가상화폐로 이뤄졌다는 점, 즉 통신과 돈 양쪽 모두 추적이 까다로운 채널을 골랐다는 사실만큼은 기록으로 남았다.
이런 방식이 왜 수사에 걸림돌이 되는지는 몇 가지로 정리된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 A씨의 이번 1심은 징역 5년이고, 같은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군사기밀을 유출한 별건에서는 대법원이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이미 확정했다. 두 사건은 형량이 다른 별개의 판단이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형량 자체보다, 간첩 자금이 현금 가방에서 지갑 주소로 옮겨간 흐름을 법정 기록으로 확인했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