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스페인 인드라시스템즈와 최소 6,600억 원 규모로 추정되는 K9 자주포 수출 실행계약을 맺으며 서유럽에 처음 진출했다. 자체 방산기업을 둔 전통 강국을 현지 생산 방식으로 뚫었다는 점에서 규모보다 위치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 매출의 비폴란드 다변화, 폴란드 3차·사우디·UAE 등 연내 대기 계약, 루마니아 현지 생산거점이 이 계약이 확장세로 이어질지 가늠할 지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8월 31일 스페인 방산기업 인드라시스템즈와 K9 자주포 수출 실행계약을 맺었다. 정확한 금액과 수량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국거래소 공시 기준을 적용하면 최소 6,600억 원을 넘는 규모로 추정된다. 지난 3월 양해각서를 실제 계약으로 확정한 것이다.
숫자만 보면 폴란드에 견줄 대형 계약은 아니다. 그런데 방산업계가 이 계약을 특별하게 보는 이유는 금액이 아니라 스페인이라는 위치에 있다. K9이 서유럽에 발을 들인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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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의 수출사는 2001년 튀르키예에서 시작해 폴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핀란드, 루마니아로 이어졌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거나 안보 위협이 절박한 북·동유럽이 주력이었고, 이집트 같은 중동·북아프리카 시장이 더해졌다. 스페인이 합류하면서 K9 운용국은 11개국이 됐다.
이들 시장의 공통점은 자국산 자주포를 대체할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는 점이다. 반면 서유럽은 사정이 다르다. 이번 계약도 한화가 기술과 핵심 부품을 대고, 인드라가 스페인 현지 공장에서 조립·생산하는 방식이다. 완제품을 실어 보내던 초기 수출과 달리, 현지 생산을 끼워야 문이 열리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서유럽은 프랑스, 독일처럼 자체 무기를 만들어 파는 전통 방산 강국들의 안마당이다. 스페인 역시 인드라라는 자국 방산기업을 두고 있다. 이런 나라가 외국산 자주포 체계를 들이는 결정은, 성능과 가격만이 아니라 현지 산업 참여까지 맞춰야 나온다. 진입 장벽이 높은 만큼, 한 번 뚫으면 이후 협상의 기준점이 된다.
파급 효과도 지역에 갇히지 않는다. 인드라그룹은 140여 개국에 걸친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한화 입장에서는 이 계약이 중남미 시장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미국 육군과는 K9을 기반으로 한 차륜형 자주포 시제품 6문 공급계약이 별도로 진행 중이다. 방산 선진국 두 축인 미국과 서유럽을 같은 시기에 두드리고 있는 셈이다.
한 건의 계약을 흐름으로 판단하려면 다음을 지켜볼 만하다.
정리하면, 스페인 계약의 진짜 관전 포인트는 이번 6,600억이 아니라 이 계약을 지렛대로 서유럽과 중남미에서 두 번째, 세 번째 문이 열리느냐다. 다만 스페인이 K9을 택한 구체적 배경은 공식적으로 설명되지 않았고, 후속 계약도 아직 전망 단계라는 점은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