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규약서 '통일' 삭제, 두 국가 노선의 완성
북한이 노동당 규약에서 '평화통일'을 비롯한 대남·통일 표현을 전면 삭제하고 김정은의 통치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문화한 사실이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분석으로 확인됐다. 이는 김정은이 2023년 말 선언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헌법에 이어 당 최고 규범에까지 반영한 조치다. 통일을 전제로 한 남측 원칙과 충돌하는 만큼, 정부의 대응 방향과 긴장 관리 방식이 앞으로의 관전 지점이다.

당규약에서 '통일'이 사라졌다
북한이 노동당 규약에서 대남·통일 관련 표현을 통째로 걷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개정된 규약을 분석해 9월 초 내놓은 결과다. 노동당 규약은 헌법과 함께 북한 체제의 최고 규범으로 꼽힌다. 그 문서에서 '통일'이라는 목표 자체가 지워졌다는 점이 이번 개정의 핵심이다.
개정은 올해 초 열린 9차 당대회에서 이뤄졌다. 규약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고, 연구기관의 분석을 통해 내용이 드러났다.
무엇이 지워졌나

Viridiana Rivera
삭제된 문구는 한둘이 아니다. 서문에 있던 "조국의 평화통일을 앞당기고 민족의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대목이 통째로 빠졌다. '남조선', '공화국 북반부', '통일전선', '민족대단결', '전국적 범위' 같은 표현도 함께 사라졌다.
이 표현들은 북한이 오랫동안 대남 정책의 명분으로 삼아 온 언어다.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민족' 무대로 보고, 그 안에서 통일을 지향한다는 틀이었다. 그 언어가 규범 문서에서 통째로 빠졌다는 것은 단순한 문구 정리가 아니라 노선의 방향을 바꾼 것에 가깝다.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의 완성
이 변화의 뿌리는 2023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해 12월 30일 당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규정했다. 남과 북을 통일을 향해 가는 특수한 사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나라로 못박은 선언이었다.
이 노선은 단계적으로 제도에 반영돼 왔다. 2024년에는 헌법을 손질해 통일 관련 조항을 빼고 영토 조항을 새로 넣었다. 이번 당규약 개정은 그 흐름을 당의 최고 규범에까지 옮겨 온 것이다. 헌법에 이어 당 규범까지 정리되면서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이 체제 전반에 걸쳐 명문화된 셈이다.
김정은 권한 강화도 함께 담겼다
이번 개정에는 통일 삭제 못지않게 눈에 띄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김 위원장 개인의 권한을 규약에 구체적으로 새겨 넣은 부분이다.
총비서가 정치국 회의와 상무위원회를 소집하고 사회한다는 조항이 신설됐고, 주요 간부를 직접 임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회의 소집권, 당원의 입·출당권처럼 권한을 조목조목 규약에 담았다. 반면 김일성·김정일주의에 대한 서술은 대거 줄었다. 선대의 유산보다 김정은 개인의 통치 체계를 규범으로 굳혔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시에는 당 조직 선거 절차를 생략한다는 조항이 처음 들어간 점도 함께 확인됐다.
남측이 지켜볼 지점
북한이 통일을 규범에서 지웠다고 해서 남측의 원칙까지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우리 헌법은 여전히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남측이 정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주목할 지점은 세 가지로 좁혀진다. 정부가 북한의 '두 국가' 규정을 어떻게 규정하고 대응할지, 통일을 전제로 짜인 기존 정책과 법 체계를 유지할지 조정할지, 그리고 대화 통로가 좁아진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을 어떻게 관리할지다. 북한의 이번 조치는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규범으로 굳어진 노선인 만큼, 남측의 대응도 단기 반응이 아니라 방향의 문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