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야구의 전설 장훈이 9월 9일 도쿄에서 향년 86세로 별세하며 은퇴 45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은 통산 3085안타 기록을 남겼다. 어린 시절 오른손 화상과 원폭 피해, 재일동포 차별을 딛고 세운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의 야구는 개인 성취를 넘어 재일동포 역사의 상징으로 읽힌다. 요미우리 4번 계보와 이승엽과의 인연, KBO 출범 기여까지 살펴보면 그가 한일 야구를 잇는 다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재일동포 야구의 전설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9일 오후 도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가 남긴 통산 3085안타는 은퇴한 지 45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프로야구에서 누구도 넘지 못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의 출발선은 또래 선수들과 달랐다. 1940년 히로시마에서 가난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났고, 네 살이던 1944년 겨울 트럭을 피하다 오른손에 큰 화상을 입어 손가락이 온전히 펴지지 않는 장애를 안게 됐다. 이듬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는 그 피해까지 겪었다.
여기에 재일동포를 향한 차별이 더해졌다. 국적 때문에 취업과 진학의 문이 좁던 시절, 야구는 차별의 벽을 뚫을 몇 안 되는 통로였다. 원폭 피해를 입은 몸으로 그 통로를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이 그의 젊은 시절이었다. 굽은 손으로 방망이를 쥔 선수가 최고의 타자가 되기까지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는 이 배경을 빼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국적 하나로 사람의 앞길이 갈리던 시대에, 그는 실력으로만 증명할 수 있는 야구를 붙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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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은 1959년 도에이(현 니혼햄)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요미우리 등을 거쳐 1981년까지 뛰었다. 통산 성적은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타율 0.319. 일본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은 선수이기도 하다. 3000안타는 매 시즌 100안타 이상을 30년 가까이 쌓아야 닿는 숫자여서, 꾸준함과 내구성을 함께 요구한다.
숫자의 무게는 시간이 증명한다. 타격왕만 일곱 차례, 그중 1967년부터 1970년까지는 4년 연속으로 정상에 올랐다. 한 시즌 반짝하는 타격이 아니라 오랜 기간 리그 정상급 타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은퇴 45년이 지나도록 3085안타 기록이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은, 이후 등장한 어떤 스타도 이 벽을 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른손이 자유롭지 않은 타자가 세운 기록이라는 점에서 그 상징성은 단순한 통산 1위 이상이다.
장훈의 존재는 한국 야구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일본에서 성공한 재일동포이면서도 뿌리를 잊지 않았고, KBO리그가 출범하는 과정에 적지 않은 힘을 보탠 인물로 꼽힌다.
세대를 잇는 상징적 장면은 요미우리에서 나온다. 요미우리의 4번 타자 계보에서 장훈은 39번째, 뒷날 이승엽은 70번째 주자였다. 일본 무대에 도전한 이승엽에게 장훈은 타격 조언과 격려를 건넨 선배였다. 이승엽은 부고 뒤 "강한 마음을 가지라던 선배님의 격려와 후배를 아껴 주신 따뜻함을 오래 기억하겠다"고 적었다. 낯선 리그에서 적응에 애를 먹던 후배에게, 같은 길을 먼저 걸은 재일동포 선배의 조언은 기록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 사람의 야구 인생을 기록만으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다만 차별과 장애를 딛고 일본 최고 타자에 오른 재일동포가 다시 후배 한국 선수의 길을 열어줬다는 궤적은, 그의 죽음이 왜 한일 양쪽에서 함께 기려지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