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들여오는 중동산 원유의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며, 10월 들어 이 해협의 선박 공격이 월간 최다를 기록하고 한국 선사 유조선까지 피격됐다. 선박 억류·몰수 위협이 현실화되면 해운 중단과 수입선 차질, 유가 급등이 연쇄로 번지며, 올해 3월 봉쇄 국면이 그 경로를 미리 보여줬다. 해협 통행량과 유조선 운임, 정부의 비축유 방출 언급 수위를 함께 지켜보면 수급 불안의 실제 신호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이 들여오는 원유의 상당수가 좁은 바닷길 하나에 묶여 있다. 2026년 1~5월 기준 중동산 원유 비중은 62.8%이고, 그 중동산의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난다. 해협이 막히거나 이곳을 지나는 배가 위험해지면 한국 정유·에너지 수급이 곧장 흔들린다. 10월 들어 해협 인근 선박 공격이 월간 최다를 기록하고 한국 선사 소유 원유운반선까지 피격되면서, 그 가능성이 다시 가까워졌다.

Jan van der Wolf
호르무즈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지나는 세계 최대 원유 길목이다. 한국은 이 길에 유독 많이 기대왔다. 다만 흐름은 바뀌는 중이다. 한국석유공사 자료를 보면 원산지 구성이 최근 2년 새 눈에 띄게 달라졌다.
| 원산지 | 2024년 | 2026년 1~5월 |
|---|---|---|
| 중동산 | 71.5% | 62.8% |
| 북미산 | 21.6% | 26.6% |
| 아프리카산 | 1.7% | 5.3% |
중동 의존을 낮추고 미주·아프리카를 늘려온 셈이다. 업계는 이 추세면 연말 중동산 비중이 처음으로 50%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본다.
위협이 현실이 된 국면은 올해 3월에 한 차례 겪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 불허를 선언하자 통행량이 하루 만에 70% 넘게 급감했다. 그때 벌어진 일이 경로를 그대로 보여준다.
첫째, 해운이 멈춘다. 배를 억류·몰수당할 위험이 커지면 선사는 운항을 피하거나 희망봉으로 돌아간다. 3월에는 '마지막 유조선'이 입항한 뒤 4월 이후 입항 일정이 비는 상황까지 갔다. 운임과 전쟁위험 보험료는 함께 치솟는다.
둘째, 수입선이 꼬인다. 중동산이 끊기면 대체 물량을 미국·호주·아프리카에서 급히 당겨와야 하는데, 거리가 멀어 도착까지 시간이 걸린다. 사우디·UAE의 홍해 우회 송유관은 호르무즈 통과량의 7분의 1 수준이라 구멍을 메우지 못한다.
셋째, 유가가 뛴다. 공급 차질 우려만으로도 국제유가는 반응한다. 실제로 브렌트유는 10월 23일 배럴당 117달러까지 올라 5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당장의 방패는 비축유다. 정부는 원유와 석유제품을 합쳐 약 208일분을 비축해 뒀다고 밝혔다(3월 기준). 다만 방출에는 신중하다. 3월 봉쇄 국면에서 정부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공조한 비축유 방출을 거론하면서도 '최후의 수단'이라며 아꼈다. 대신 UAE에서 2400만 배럴을 확보하고 러시아산 도입까지 검토하는 등 물량 확보를 먼저 움직였다.
구조적 완충은 수입선 다변화다. 미주산 원유 비중은 올해 1~8월 26.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호르무즈 한 곳에 대한 의존을 낮춰온 흐름 자체가 위기 때 버티는 힘이 된다.
한국 수급에 경고등이 켜졌는지 보려면 다음을 함께 보면 된다.
전례도 참고가 된다. 2021년 이란은 호르무즈에서 한국 국적 유조선을 나포해 수개월간 억류한 바 있다. 억류 위협이 공허한 엄포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다만 208일분의 비축과 빨라진 수입선 다변화는 그때보다 한국의 대응 여력을 키워놓았다. 당장의 유가 등락 한두 번보다, 위 신호들이 한꺼번에 켜지는지를 보는 것이 수급 불안을 읽는 더 정확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