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이 10월 29일 평양을 찾아 최선희 외무상과 만났고, 스위스는 2020년 중단했던 평양 사무소를 10월 19일 정치 외교 거점으로 다시 가동했다. 1953년 정전 이후 중립국감독위원회 등으로 남북 모두와 통해온 스위스가, 코로나로 끊겼던 대북 소통 채널을 복원하며 대화 중재자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카시스 장관이 방북 직후 한국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만큼, 이 거점이 실제 대화의 통로로 작동할지는 인도적 협력 재개와 후속 접촉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냐치오 카시스 스위스 외무장관이 10월 29일 평양을 찾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만나 평양 주재 스위스 외교사무소를 새로운 형태로 재개하는 방안과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고, 노동당 실세인 조용원 비서와도 마주 앉았다. 핵심은 사무소다. 스위스는 2020년 운영을 멈췄던 평양 거점을 10월 19일부터 다시 가동했고, 이번엔 인도적 협력을 넘어 정치적 소통을 담당하는 외교 거점으로 성격을 바꿨다. 수교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 정치 사무소를 둔 것이다.

다솔 박
북한과 선이 닿는 서방 국가는 많지 않다. 스위스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스위스는 스웨덴과 함께 중립국감독위원회(NNSC)의 일원으로 판문점에 상주해 왔다. 남과 북 어느 편도 아닌 중립국이라는 위치가, 양쪽 모두와 대화할 수 있는 드문 통로를 만들어 줬다.
스위스는 애초에 이런 중개에 특화된 나라다. 국교가 끊긴 적대국 사이에서 서로의 이익을 대신 전달하는 '보호국' 역할을 오래 맡아 왔고, 분쟁 당사자들을 불러 모으는 협상 무대도 자주 제공했다. 북한과 서방 사이에서 조용한 메신저 노릇을 해 온 것도 그 연장선이다. 이번 사무소 재개는 그 역할을 임시 심부름이 아니라 상주 외교 거점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스위스의 평양 사무소는 원래 개발협력청(SDC)의 인도주의 협력 창구였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운영이 중단됐고, 현지 소통선도 함께 끊겼다. 스위스 외무부는 이 끊긴 채널을 복원하기 위해 사무소를 재가동했다고 밝혔다. 단순 복귀가 아니다. 인도적 지원 재개 가능성을 다시 타진하면서 정치 대화까지 담는 쪽으로 기능을 넓힌 점이 달라진 대목이다.
팬데믹 당시 평양의 외국 공관은 대부분 철수했다. 이후 폴란드가 2024년 상주 외교를 다시 꾸리는 등 유럽 국가들이 조금씩 평양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스위스는 그 흐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도적 창구를 정치 거점으로 격상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카시스 장관은 방북 다음 날인 30일 곧장 서울로 향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을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고 한반도 정세를 논의했다. 중재자를 자처하는 쪽이 북측을 만난 직후 남측에 결과를 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스위스 외무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재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북에 다녀온 창구가 곧바로 서울과 연결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 거점의 쓰임새를 짐작하게 한다.
사무소가 열렸다고 대화가 바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단계에서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긴 이르다.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다. 먼저 중단됐던 인도적 지원이 실제로 재개되는지다. 다음은 스위스를 통한 북·미 또는 남북 간 접촉이 뒤따르는지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이 채널을 어느 수준까지 열어두는지다. 거점이 생겼다는 사실과 그 거점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당분간은 발표가 아니라 뒤따르는 행동을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