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10월 22일 가정마다 72시간을 버틸 비상용품을 갖추라는 비 레디 캠페인을 내놨고, 물 9리터와 사흘치 식량 등 품목을 구체적으로 권고했다. 국방장관이 적대국 위협을 근거로 들었지만 이는 EU와 북유럽이 이미 해온 72시간 자립 대비의 연장선이다. 한국도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유사한 안내가 있어, 전쟁보다 정전·재난 대비 차원에서 가정 점검표를 챙겨둘 만하다.

영국 정부가 10월 22일(현지시간) 가정마다 비상용품을 갖춰두라는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내놨다. 핵심은 정전이나 공급 중단 같은 상황에서 약 72시간, 사흘을 스스로 버틸 분량을 미리 챙겨두라는 것이다.
권고 품목은 구체적이다. 물은 1인당 하루 3리터씩 사흘치, 즉 9리터를 생수로 준비하고 요리와 세면용 물은 따로 두라고 했다. 여기에 사흘치 식량, 현금, 담요, 구급상자, 여분 건전지를 포함한 손전등, 그리고 전기 없이 돌아가는 수동식 FM 라디오를 더한다. 겨울 폭풍철을 앞두고 나온 안내다.

Nancy Zjaba
눈에 띄는 건 이 캠페인을 국방장관이 전면에서 설명했다는 점이다. 웨스 스트리팅 국방장관은 적대국의 위협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텔레그래프 기고에서 2030년이면 적대 세력의 전시 경제가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며 "준비할 시간이 1000일 남짓"이라고 적었다.
위협의 종류도 과거와 다르다. 영국 정부는 기후위기와 사이버공격, 적대국을 함께 들었다. 러시아발 사이버공격이 기업 결제 시스템을 마비시키거나 공급망을 흔들 수 있고, 해저 송유관과 통신 케이블을 감시하는 정찰 활동도 거론됐다. 올해 1월 폭풍 고레티로 수만 가구가 정전을 겪은 일도 배경에 깔려 있다. 안보장관 댄 자비스는 "할 수 있는 사람은 권고를 따르라"고 했다.
다만 이것을 전쟁 임박 신호로 읽기는 이르다. 영국은 1980년 핵전쟁을 염두에 두고 14일치 식량을 권고한 적이 있는데, 이번 사흘치는 그보다 훨씬 현실적인 일상 재난 대비에 가깝다. 정부도 불안을 키운다는 비판을 우려해 그간 이런 캠페인을 주저해 왔다.
유럽 전체로 보면 새로운 흐름이 아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3월 '대비 태세 연합 전략'을 내놓으며 시민들에게 최소 72시간 분량의 필수품을 갖추라고 권고했다. 당시 담당 집행위원은 물과 식량부터 손전등, 보조배터리, 라디오, 현금, 약품까지 영상으로 직접 소개했다.
스웨덴과 핀란드, 독일은 이보다 앞서 국가 차원의 위기 대비 지침을 가정에 제공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전 이후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진 것이 공통 배경이다. 영국의 이번 조치는 이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셈이다.
한국에도 비슷한 안내가 이미 있다.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safekorea.go.kr)에 '비상대비행동요령'이 올라와 있고, 지방자치단체 안전 누리집들도 가정용 비상용품을 소개한다. 품목은 생수와 비상식량, 손전등, 상비약, 건전지를 갖춘 라디오, 위생용품처럼 유럽 권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우선순위다. 한 전문가는 정전 때 휴대전화가 꺼지면 정보 확인도 위치 알림도 어려워진다며 보조배터리를 가장 먼저 꼽았다. 전시 상황보다 태풍, 지진, 정전 같은 재난에서 사흘을 버티는 쪽이 한국 가정엔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거창한 생존 장비가 아니라, 정전된 밤에 당장 손이 가는 물건부터 한자리에 모아두는 것이 시작이다. 영국의 사흘은 공포의 숫자가 아니라 준비의 단위로 읽는 편이 쓸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