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10월 29일 저녁 사우디 측 요청으로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통화해, 중동전쟁으로 인한 사우디의 피해에 위로와 연대를 전하고 전쟁 중에도 이어진 원유 우선 공급에 감사를 표했다. 두 정상이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한 이 통화의 핵심에는,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한국과 주요 공급국 사우디라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다만 구체적 신규 합의나 정상회담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고 종전 합의도 없어, 이번 통화는 새로운 전환점보다 관계 재확인으로 보는 편이 맞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월 29일 저녁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 대통령실 강유정 수석대변인의 서면 브리핑에 따르면, 이번 통화는 사우디 측 요청으로 성사됐다. 급박한 안보 상황 속에서 상대국이 먼저 연락을 해 왔다는 점이 이 통화의 성격을 짐작하게 한다.
브리핑이 전한 통화의 뼈대는 세 가지였다. 중동전쟁으로 사우디가 입은 피해에 대한 위로, 사태가 빨리 끝나 평화와 안정이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기원, 그리고 전쟁 중에도 이어진 원유 공급에 대한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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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중 한국 입장에서 가장 실질적인 대목은 원유다. 이 대통령은 사우디가 전쟁 중에도 한국에 원유를 최우선으로 공급해 준 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지난 4월 강훈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사우디를 찾았을 때 사우디 측은 2억5000만 배럴 규모의 원유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이 문장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처지에 있다. 한국은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사우디는 오랫동안 한국이 가장 많이 들여오는 원유 공급국 가운데 하나였다. 산유국이 전쟁으로 흔들릴 때 한국이 가장 먼저 걱정해야 하는 것이 공급선인데, 그 공급이 유지됐다는 사실을 정상 통화에서 직접 확인한 셈이다.
통화 브리핑 자체는 교전 당사국이나 피해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사우디가 입은 피해의 맥락은 다른 경로에서 드러난다.
외교부는 앞서 예멘 후티 반군이 리야드 국제공항을 비롯한 사우디 민간시설을 공격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한 데 대해 규탄하고 사우디에 연대를 표한 바 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올여름 이후 후티의 미사일·드론 공격이 이어지며 사우디 남부 도시와 에너지 시설이 거듭 피해를 입었다. 즉 이번 통화의 배경에는 산유국 사우디가 본토에서 공격을 받는 상황이 깔려 있다. 원유 공급에 대한 감사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닌 이유다.
한국과 사우디의 접점은 원유 한 갈래가 아니다. 두 나라의 협력은 수십 년간 건설에서 가장 두텁게 쌓여 왔고, 최근에는 네옴으로 대표되는 사우디의 대형 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는 구도로 이어졌다.
2023년 양국이 40여 년 만에 채택한 공동성명에는 건설을 넘어 수소와 재생에너지 협력이 담겼고, 올해 6월에는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사우디를 방문해 원유·가스 분야 협력 양해각서를 맺었다. 산유국이 석유 이후를 준비하고, 한국이 그 전환에 기술과 인력을 대는 그림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번 통화에서 두 정상이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라는 표현을 쓴 배경이기도 하다.
정리하면, 이번 통화로 분명해진 것은 양국이 전략 동반자 관계를 재확인했고, 전쟁 상황에서도 원유 공급이라는 핵심 고리가 유지됐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아직 알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두 정상은 "편리한 시기에 직접 만나기로" 했을 뿐 정상회담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고, 새 계약이나 투자 합의가 발표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평화 회복을 바란다'는 기원이었지 종전이나 휴전 합의가 이뤄졌다는 뜻이 아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우디의 생산 시설과 수출선이 받는 압력도 커진다. 그래서 이번 통화는 새로운 전환점이라기보다, 불안정한 국면에서 공급선을 다시 확인한 관리 차원으로 읽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