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11일 러·우 '에너지 휴전'을 발표했지만, 다음 날부터 러시아의 발전소 공격과 우크라이나의 정유시설 타격이 이어지며 사실상 무너졌다. 합의 문서도, 적용 범위에 대한 합의도, 검증 장치도 없는 제3자의 발표는 교전 당사자를 구속하지 못했다. 앞으로는 서명된 합의와 중립 검증, 미국의 무기 지원 결정, 그리고 지상에서 실제로 공격이 멎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현지시간 10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에너지 휴전'에 합의했다고 올렸다. 양측이 서로의 에너지 시설 공격을 멈춘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그 발표가 합의의 실체를 담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합의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하고 소셜미디어를 보고 알았다고 밝혔다. 크렘린은 세부 사항이 아직 조율 중이라고 했고, 러시아의 공식 동의도 확인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실제로 요구한 것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 타격을 멈추라는 쪽에 가까웠다. 세계와 미국이 경유를 필요로 하는데 우크라이나의 공습이 공급을 흔든다는 논리였다. 반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발전소 공격을 멈추게 할 장치는 뚜렷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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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일과 실제 공격이 벌어진 날을 구분하면 상황이 분명해진다.
12일 러시아군은 하르키우주의 나프토가스 가스 생산시설을 공격했다. 트럼프 발표 바로 다음 날이었다. 14일에는 더 큰 공격이 이어져 최소 9명이 숨지고 수십만 가구가 전기를 잃었다. 젤렌스키는 전력망 시설 26곳과 석유·가스 부문 4곳이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고, 러시아 국방부는 키이우·하르키우 지역 발전소 6곳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는 며칠간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자제했지만, 15일 드론 69대로 랴잔주 정유시설을 타격하며 공격을 재개했다. 젤렌스키는 "이제 제약은 끝났다"고 했고, 트럼프는 16일 이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난했다.
첫째, 합의 문서가 없다. 적용 대상이 무엇인지, 기간이 얼마인지, 양측이 서명했는지가 불명확하다. 제3자가 발표했다고 해서 교전 당사자가 구속되지는 않는다.
둘째, '에너지'의 의미가 서로 다르다. 미국과 트럼프는 러시아 정유시설을, 우크라이나는 겨울을 앞둔 자국 전력망을 떠올린다. 같은 단어로 다른 것을 말하면 합의가 성립하기 어렵다.
셋째, 검증 수단이 없다. 긴 전선에서 드론과 미사일이 오가는데 현장을 확인할 중립 감시단이 없다. 러시아는 군사시설을 노렸다고 하고 우크라이나는 민간 전력망이 당했다고 한다. 양측 주장이 엇갈려도 가릴 방법이 마땅치 않다.
넷째, 멈출 유인이 약하다. 러시아는 겨울을 앞두고 전력망을 흔들려 하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과 연료를 줄이려 정유시설을 노린다. 양쪽 모두 에너지 공격을 전략으로 보는 한 먼저 손을 떼기 어렵다.
지금 결론을 내리기보다 다음 지점을 지켜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이번 국면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다. 발표만으로 전쟁의 한 축이 멈추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