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가 2027 국방수권법에서 해외 조선소의 전투함 건조에 해군 예산을 쓰지 못하게 하는 수정안을 통과시켜, 1600조원대로 거론되는 한국 건조 기대와 달리 전투함 국내 건조는 사실상 막혔다. 번스-톨레프슨법과 일자리·안보를 앞세운 의회 논리가 겹친 정치적 장벽이라 행정부의 조건부 예외만으로는 뚫기 어렵다. 반면 MRO와 비전투 지원함, 미국 내 조선소를 통한 건조는 이미 열려 있어 한국 조선업의 현실적 공략 지점은 거기부터다.

미 해군 함정을 한국이 짓는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이름이 붙었고, 사업 규모가 1600조원대로 거론된다. 그런데 정작 핵심인 전투함을 한국 조선소에서 짓는 길은 지금 미국 국내법에 막혀 있다. 기대 기사와 현실 사이의 간극부터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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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은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이다. 미 해군 함정은 원칙적으로 미국 조선소에서만 짓도록 한 법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여기에 조건부 예외를 열긴 했다. 외국 조선사가 미국에 조선소를 짓거나 인수하고, 미국인을 고용·훈련하며, 기술을 이전하고 현지 공급망을 갖추면, 최초 2척에 한해 본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한시 허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의회다.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2027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서 해외 조선소의 전투함 건조를 막는 수정안을 44대 12로 통과시켰다. 민주당 재러드 골든(메인주) 의원이 주도했다. 해군에 배정된 예산을 외국 조선소에서 건조할 전투함 조달 계약에 쓸 수 없다는 내용이다. NDAA는 비전투함에만 국가안보 면제라는 예외를 뒀다. 전투함은 걸러진 셈이다.
이건 기술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와 안보라는 정치의 문제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은 지역구에 '일자리 수호자'로 보이려 한다. 함대의 일부라도 외국 노동력으로 짓는다는 발상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그래서 행정부가 문을 열어도, 예산권을 쥔 의회가 닫아버릴 수 있다.
역설도 있다. 미국은 배가 급하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미국이 중국과 장기전을 치르면 함정 건조와 정비 역량이 치명적으로 부족하다며, 한국 같은 우방의 제조 기반을 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해군 함정은 현재 296척인데 2054년 목표는 381척이고, 앞으로 30년간 약 364척을 새로 지어야 한다. 수요는 분명한데 정치가 공급을 막는 구도다.
여기서 '건조'와 'MRO(유지·보수·정비)'를 갈라 봐야 한다. 둘은 통과하는 문이 다르다.
MRO는 기존 함정을 점검하고 수리하는 일이다. 해외 건조 금지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이미 열려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해 월리 쉬라함과 유콘함, 최근 찰스 드류함까지 정비를 맡았고, HD현대중공업은 4만1000톤급 화물보급함 앨런 셰퍼드호를 울산에서 정비했다. 모두 전투함이 아니라 보급함 계열이다.
신규 건조는 수익성이 훨씬 높지만, 전투함일수록 정치 장벽이 두껍다. MRO는 한 척당 이익이 건조만큼 크진 않아도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안정적 일감이다. 업계에서는 미 해군 MRO 시장을 연 20조원 안팎으로 본다. '큰 건조 한 방'과 '꾸준한 정비'는 성격이 다른 사업이다.
그래서 판단 기준은 비교적 명확하다. 가능성이 열린 순서대로 접근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전투함 전선 건조라는 가장 큰 상징은 미 의회의 정치가 풀려야 열린다. 하원 본회의와 상·하원 조정이 남아 조항이 바뀔 여지는 있지만, 반대 기류가 강해 단기간에 뒤집히긴 어렵다. 기대 기사의 숫자보다, 지금 실제로 열려 있는 문이 어디인지를 보는 편이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