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8월 21일 대미 관세협상 실무를 총괄해 온 박정성 통상차관보를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했다. 전임 여한구 본부장이 사유 비공개로 경질된 지 엿새 만의 인선으로, 협상 판을 새로 짜기보다 연속성을 택했다는 신호다. 관건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이행 방안과 8월 말~9월 초로 예고된 프로젝트 발표가 실제로 나오는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21일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박정성 통상차관보를 임명했다. 전임 여한구 본부장이 8월 15일 자정 전격 경질된 지 엿새 만이다. 핵심은 새 얼굴로 판을 바꾸는 대신, 대미 협상 실무를 총괄해 온 사람을 그대로 사령탑에 앉혔다는 점이다. 정부가 밝힌 임명 이유도 "대미 관세 및 투자 협상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국익을 극대화"였다.

Andrey Matveev
박정성 신임 본부장은 30년 가까이 통상·무역정책 분야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통상 관료다. 행정고시 40회 통상직으로 공직에 들어와 산업부 무역투자실장과 통상차관보를 지냈고, 산업부 출신으로는 처음 세계무역기구(WTO) 차석대사를 맡았다.
이력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미국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로스쿨에서 학위를 받았고 뉴욕주와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대미 관세협상 태스크포스의 실무수석대표를 맡아 지금 진행 중인 협상의 세부 쟁점을 이미 손에 쥐고 있는 인물이다. WTO 투자원활화협정 협상에서는 공동의장을 지냈다.
전임 여한구 본부장의 퇴장은 이례적이었다. 8월 15일 자정을 기해 전격 경질됐는데, 정부는 면직 사유를 공개하지 않았다. 산업부는 구체적 배경을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임명권자의 권한과 정치적 판단"이라고만 밝혔다. 정부 안팎에서는 협상 성과보다 개인적 사안과 관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지만, 확인된 것은 없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대미 협상 사령탑 자리가 비는 순간이 미국의 대한국 투자 압박이 세지던 국면과 겹쳤다. 협상 공백이 길어질수록 마찰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후임 인선이 엿새 만에 마무리된 배경에는 이런 급박함이 깔려 있다.
실무 총괄자를 본부장으로 끌어올린 선택은 방향을 분명히 한다. 협상 전략을 원점에서 다시 짜기보다, 이미 진행 중인 협상을 끊김 없이 이어가겠다는 쪽이다. 협상 상대인 미국 입장에서도 대화 창구가 바뀌되 내용은 그대로 아는 사람이 앉은 셈이라, 처음부터 상황을 설명할 필요가 줄어든다.
다만 연속성이 곧 성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실무를 잘 아는 것과 남은 쟁점을 유리하게 매듭짓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새 본부장이 넘겨받은 협상판이 그리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큰 현안은 한미가 합의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전략 투자다. 이 가운데 2000억 달러는 반도체·에너지·AI 같은 전략 산업에, 1500억 달러는 조선 분야 협력에 배정됐다. 관세율 자체보다 이 큰돈을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지금의 핵심 쟁점이다.
일정도 촘촘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8월 16일 방미 당시 8월 말이나 9월 초에 프로젝트 발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막판으로 갈수록 구체적인 실무 쟁점들이 불거지고 있다고도 했다. 정리하면 앞으로 확인할 지점은 두 가지다. 예고된 프로젝트 발표가 실제로 8월 말~9월 초에 나오는지, 그리고 나머지 2000억 달러의 투자 이행 방안이 어떤 조건으로 매듭지어지는지다. 박정성 본부장의 첫 시험대가 바로 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