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구호·의료시설은 제네바협약과 추가의정서에 따라 특별히 보호되며, 공격이 합법이 되려면 구별·비례·예방 원칙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2026년 3월 143명 넘게 숨진 카불 재활센터 공습처럼 민간 피해가 큰 사건은 이 원칙 위반 여부로 전쟁범죄 가능성이 가려진다. 시설의 군사적 사용 여부와 사전 경고 유무 같은 사실관계가 확인돼야 하며, 책임 규명은 당사국 조사와 ICC, 유엔 조사로 이어진다.
전쟁에도 규칙이 있다. 제네바협약과 1977년 추가의정서가 정한 국제인도법의 출발점은 '구별' 원칙이다. 교전 당사자는 전투원과 민간인, 군사목표와 민간물자를 반드시 구분해 공격해야 한다.
병원과 진료소, 구호요원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보호받는다. 의료·구호시설은 민간물자 가운데서도 특별한 지위를 가지며, 교전 당사자는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다.
2026년 3월 16일 파키스탄 공군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동부의 오미드 마약재활센터를 공습한 사건이 이 원칙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2,000병상 규모였던 이 센터에서 최소 143명이 숨지고 250명 넘게 다쳤으며, 대부분이 치료 중이던 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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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 원칙만으로 판단이 끝나지는 않는다. 군사목표를 노린 공격이라도 민간 피해가 예상된다면 두 관문을 더 통과해야 한다.
첫째는 비례성이다. 예상되는 민간인 사망·부상이 그 공격으로 얻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군사적 이익에 비해 과도하다면, 그 공격은 금지된다. 군사목표가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규모 민간 피해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둘째는 예방 조치다. 추가의정서는 공격하는 쪽에 '끊임없는 주의' 의무를 지운다. 목표가 진짜 군사목표인지 검증하고, 피해를 줄일 수단을 고르고, 상황이 허락하면 사전에 경고해야 한다.
파키스탄 정보부 장관은 공습이 "기술지원 시설과 탄약 저장고"를 겨눈 "정밀 타격"이었다고 밝혔다. 재활센터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반면 휴먼라이츠워치는 이 시설이 군사 용도로 쓰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양측 설명이 갈리는 이 지점이 곧 합법성 판단의 핵심이다.
의료·구호시설의 보호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시설이 '적에게 해로운 행위', 즉 본래의 인도적 기능을 벗어나 군사 활동에 쓰일 때는 보호를 잃을 수 있다.
다만 그 문턱은 높다. 보호를 거둬들이려면 원칙적으로 상당한 시간을 정한 경고를 먼저 보내고, 그 경고가 무시됐을 때라야 공격이 검토될 수 있다. 시설 안에 무장 인원이 있었다는 식의 사후 주장만으로 즉각적인 폭격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구호시설 폭격 보도를 접했을 때 사실관계를 가르는 질문은 대체로 정해져 있다.
공격한 쪽의 발표만으로 사건이 종결되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군사목표를 타격했다"는 설명과 "민간시설이 파괴됐다"는 현장 보고가 충돌할 때,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독립 조사로만 가려진다.
위법이 확인되더라도 책임 규명이 자동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경로는 크게 세 갈래다.
먼저 공격을 수행한 당사국이 스스로 조사할 의무를 진다. 국제인도법은 자국군이 전쟁범죄 혐의를 받으면 공정하게 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요구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개인의 전쟁범죄를 다룬다. 관할에는 조건이 있다. ICC는 범행이 벌어진 영토나 가해자의 국적이 당사국일 때 개입할 수 있다. 카불 사건은 아프가니스탄이 2003년부터 로마규정 당사국이어서, 가해 주체인 파키스탄이 비당사국이라도 범행이 아프간 영토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관할 성립의 여지가 생긴다. 2025년 2월 탈레반 당국이 로마규정 탈퇴를 선언했지만, 탈퇴 이전에 벌어진 범죄에 대한 ICC의 관할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와 별도로 유엔 인권이사회가 진상조사단이나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실관계를 규명하는 길도 있다. 국가 대 국가의 책임은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다룬다.
어느 경로든 공통점은 분명하다. 폭격 직후의 주장이 아니라 검증된 사실관계가 쌓여야 비로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