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8월 13일 '거대한 환적사기' 보고서에서 한국을 중국산 관세 우회 위험이 높은 1유형 국가로 분류하고 경기 반도체 벨트를 통로로 지목했다. 다만 한국 기업이 원산지 세탁에 가담했다는 구체적 사례는 제시되지 않았고, 이 지정이 새 관세로 이어지면 지난해 합의한 15% 관세 상한이 흔들릴 수 있다. 아직 정부의 공식 대응은 확인되지 않은 만큼, AI 기반 단속이 어떤 절차로 강화되는지와 통상 협상에 미칠 영향을 지켜봐야 한다.
미국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이 8월 13일(현지시간) '거대한 환적사기(The Great Transshipment Scam)'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중국이 미국의 고율 관세를 피하려고 40여 개국을 거치는 '그림자 환적 네트워크'를 쓰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여기서 가장 높은 위험 등급인 1유형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 EU, 캐나다, 인도, 멕시코, 대만, 이스라엘과 같은 묶음이다.
1유형으로 분류된 근거는 한국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아니다. 중국 연계 물량이 많고, 산업 기반이 다변화돼 있으며, 대미 수출망이 발달해 있어 정상적인 무역 흐름 속에 불법 환적이 섞여 들어갈 여지가 크다는 구조적 판단이다. 보고서는 특히 경기도 반도체 벨트가 중국산 집적회로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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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겨냥하는 것은 이른바 원산지 세탁(origin shifting)이다. 중국산 제품을 한국 같은 제3국으로 옮긴 뒤 재포장, 재라벨링, 재송장 발행이나 가벼운 조립·가공만 거쳐 원산지를 제3국산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중국에서 직접 수출할 때보다 낮은 관세로 미국에 들어갈 수 있다.
규모 추정치는 기관마다 크게 벌어진다. 골드만삭스는 연 400억 달러, 백악관 경제자문위는 600억 달러, 미 상무부는 1,090억 달러로 봤고, 보고서가 제시한 상단은 3,030억 달러에 이른다. 백악관은 이로 인한 관세 손실을 연 100억~1,000억 달러, 일자리 손실을 약 45만 개로 추산했다. 다만 이 숫자들은 편차가 큰 추정이라 확정된 피해액으로 읽기는 어렵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보고서는 한국 기업이나 제품이 의도적으로 원산지 세탁에 가담했다는 구체적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다. 제3국 비중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불법 환적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단서를 달았다.
지목 당일까지 나온 국내 보도는 대부분 보고서 내용을 전하는 데 그쳤고, 정부나 산업계의 공식 대응 방침은 아직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지목이 실제 관세로 이어질 경우의 파장은 분명하다.
지난해 한미 통상 합의의 핵심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15% 관세 상한이었다. 환적국 지정을 빌미로 새로운 관세가 붙으면 이 상한선이 흔들릴 수 있다. 중국산에는 이미 평균 50% 안팎의 관세가 매겨지는 상황이라, 한국이 '통로'로 취급되는 것 자체가 협상 카드로 쓰일 여지가 있다.
단속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가 첫 번째 관전 포인트다. 백악관은 AI를 활용한 '탐지형 국경(Detective Border)'을 대응책으로 제시했다. 선적 데이터, 운송 이력, 제품 분류, 소유 관계를 한데 모아 분석해 정상적인 생산과 단순 통과 무역을 구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시스템이 실제로 언제, 어떤 품목부터 적용되는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는 한미 통상 협상과의 연결 고리다. 이번 지정이 별도 조치로 끝날지, 아니면 협상 압박 카드로 이어질지에 따라 수출 기업이 받는 영향이 달라진다. 반도체처럼 직접 거론된 품목을 다루는 기업이라면 원산지 증빙과 공급망 기록을 미리 정리해 두는 편이 현실적이다. 지정 근거가 구조적 정황인 만큼, 결국 '우리 제품은 통과 무역이 아니다'라는 것을 데이터로 보일 수 있느냐가 방어의 핵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