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경상수지는 461억 달러로 역대 2위 흑자를 기록했지만, 환율은 흑자 규모만큼 내려오지 않았다. 벌어들인 달러가 환전 지연과 해외투자로 외환시장에 곧장 풀리지 않았고, 미국 금리 같은 대외 변수가 함께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음 지표에서는 상품수지뿐 아니라 서비스·본원소득수지와 환전 속도, 대외 변수를 함께 봐야 환율 방향을 읽을 수 있다.
8월 경상수지가 461억 달러 흑자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상식대로라면 벌어들인 달러가 쏟아져 원화가 크게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환율은 흑자 규모만큼 내려오지 않았다. 번 달러가 외환시장에 곧장 풀리지 않는 구조 때문이다.
경상수지 흑자는 분명 원화 강세 요인이다. 다만 '흑자가 났다'와 '환율이 내린다' 사이에는 몇 단계가 더 있다. 그 사이를 들여다보면 흑자 뉴스와 환율이 왜 따로 가는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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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는 네 갈래로 나뉜다. 물건을 사고팔아 생기는 상품수지, 여행과 운송 등의 서비스수지, 해외 투자와 임금에서 오는 본원소득수지, 그리고 이전소득수지다. 8월 흑자의 대부분은 상품수지(468억 달러)에서 나왔다. 반면 서비스수지는 16억 8000만 달러 적자였다. 적자 폭이 1년 전보다 줄긴 했지만, 여행 등에서는 여전히 달러가 빠져나간다.
본원소득수지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국내 기업과 투자자가 해외에서 받는 배당·이자가 들어오는 항목인데, 거꾸로 외국인 주주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4분기에는 달러가 나가며 흑자를 깎는다. 한국은행도 올해 4분기 배당 지급을 변수로 꼽았다. '경상수지 흑자'라는 한 숫자 안에서도 달러가 들어오는 항목과 나가는 항목이 섞여 있는 셈이다.
더 중요한 건 번 달러가 실제로 원화로 바뀌느냐다. 수출 기업이 받은 달러를 바로 환전하지 않고 쌓아 두면, 흑자는 통계에 잡혀도 외환시장의 원화 수요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거주자가 해외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며 달러를 다시 내보내는 흐름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 이후 금리가 높았던 국면에서 흑자 달러가 시장에 충분히 풀리지 않는 간극이 있었다고 봤다. 환율이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달러를 먼저 사두고 파는 건 미뤘기 때문이다. 이 흐름이 올해 7월부터 바뀌어, 쌓여 있던 달러가 외환시장에 들어오며 원화가 강해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원달러 환율은 10월 6일 1330원대로 내려왔다.
결국 흑자 자체보다 '그 달러가 언제 환전되느냐'가 환율을 움직인다. 미국 금리와 달러인덱스 같은 대외 변수가 겹치면, 흑자가 쌓여도 환율은 한동안 꿈쩍하지 않을 수 있다.
환율뿐 아니라 체감경기와도 거리가 있다. 8월 수출에서 IT 품목은 1년 전보다 162% 늘었지만 비IT는 8% 증가에 그쳤다. 흑자를 반도체가 끌고 있다는 뜻이다.
특정 산업과 대기업에 집중된 흑자는 가계 소득이나 내수 회복으로 바로 번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수입이 줄어 생긴 '불황형 흑자'도 아니다. 8월 수입은 1년 전보다 23.8% 늘었다. 숫자는 역대급이어도 피부로 느끼는 경기와 어긋나는 배경이다.
다음 경상수지 발표에서는 흑자 규모만 보지 말고 구성과 흐름을 나눠 보는 편이 낫다.
흑자가 커도 달러가 환전되지 않거나 대외 변수가 반대로 움직이면, 환율은 흑자 뉴스와 따로 갈 수 있다. 숫자 하나가 아니라 그 안의 흐름을 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