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026년 10월 러시아산 경유를 공급받기 위해 자국 제재를 2027년 4월까지 한시 완화했지만, EU와 영국은 같은 품목 제재를 유지하며 추가 제재를 추진한다. 러시아의 석유 수출 대금이 전쟁 자금으로 흘러가는 구조 때문에 제재 완화는 곧 전쟁 지원이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EU 외무장관 회의의 추가 제재 표결과 미국 하원의 대러 제재법 처리, 재무부 일반허가 문서가 앞으로의 방향을 가른다.
2026년 10월 9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디젤)를 공급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공개한 수치로는 즉시 30만 톤, 11월에 50만 톤, 그 뒤 100만 톤, 정유시설 상황에 따라 추가로 300만 톤까지다. 미국 재무부는 이에 맞춰 2027년 4월 초까지 러시아산 경유 거래를 허용하는 일반허가를 냈다.
전쟁 자금줄을 막겠다며 제재를 쌓아온 서방 공조에 처음으로 눈에 띄는 균열이 생긴 장면이다. 중동발 공급 차질로 경유 가격이 뛰었고, 중간선거를 약 3주 앞둔 상황에서 연료비 부담을 덜려는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유는 화물차와 농기계, 난방에 두루 쓰여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는 품목이라, 정치적으로 민감하다. 다만 이 공급이 실제로 미국 내 가격을 얼마나 낮출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회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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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제재는 단일 조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세 층위로 작동한다.
첫째는 원유 가격 상한이다. EU와 영국은 러시아산 원유를 사고팔 때 적용하는 상한을 배럴당 47.6달러에서 44.1달러로 낮췄고, 이는 2026년 2월 1일부터 적용됐다. 상한을 우랄유 시장가보다 약 15% 낮게 유지하도록 자동 조정하는 방식이다. 상한을 넘는 가격에는 유럽계 보험·운송 서비스를 쓸 수 없게 해, 거래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구조다.
둘째는 석유제품 금수다. EU는 18차 제재 패키지로 2026년 1월 21일부터 러시아산 원유를 역외에서 정제한 석유제품의 수입과 관련 서비스를 금지했다. 원유를 제3국에서 가공해 '러시아산이 아닌' 제품으로 바꿔 들여오는 우회로를 막으려는 조치다.
셋째는 미국의 2차 제재다. 미 상원은 2026년 8월 7일 '그레이엄 러시아·이란 제재법'을 86대 11로 통과시켰다. 러시아 원유·가스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인도·중국 등에 최대 100% 관세를 물리고, 그림자 함대와 은행을 겨냥하는 내용이다. 이 법은 아직 하원에 계류돼 있고, 대통령에게 면제 권한을 준다.
이번 경유 합의로 세 축의 입장 차이가 선명해졌다.
| 주체 | 최근 조치 | 기본 입장 |
|---|---|---|
| 미국 | 경유 거래 한시 허용 | 국내 유가 완화 우선 |
| EU | 제재 유지·추가 추진 | 압박 지속 |
| 영국·독일 | 기존 제재 유지 | 대러 압박 유지 |
미국은 자국 제재를 한시적으로 풀었지만, EU와 영국의 제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즉 미국 기업이 러시아 경유를 사더라도 유럽계 보험이나 금융이 얽히면 여전히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제재는 한 나라가 푼다고 전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국 규정이 겹쳐 작동하기 때문이다.
EU가 이번 완화를 전쟁 지원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하다. 석유·가스 수출 대금이 러시아 전비의 핵심 재원이기 때문이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경유 제재를 풀면 모스크바에 전쟁에 쓸 돈을 더 쥐여주는 것이라며, 지금은 압박을 늦출 때가 아니라고 밝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러시아의 긴장 완화 약속 없이 제재만 푸는 것은 전쟁을 길게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본 세 겹의 제재가 겨냥한 것도 결국 이 수출 대금이다. 가격 상한은 러시아가 원유를 싸게 팔도록 압박하고, 석유제품 금수는 우회 수출을 막으며, 2차 제재는 큰손 구매국에 비용을 물린다. 완화는 이 장치 하나를 느슨하게 푸는 셈이다.
판단하자면, 수출 대금이 전비로 흘러가는 구조가 사실인 이상 '전쟁자금' 비판 자체는 과장이 아니다. 다만 그 반대편에는 자국 연료비라는 현실 정치가 있어, 어느 쪽이 더 무겁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황이 어디로 가는지는 몇 가지 발표로 가늠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것은 EU 외무장관 회의의 추가 제재 표결로,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지정이 예고돼 있다. 미국 쪽에서는 하원이 그레이엄 제재법을 언제 처리하는지가 분수령이다.
여기에 재무부 일반허가의 실제 문서 내용과, 트럼프가 밝힌 경유가 실제로 언제 누구를 통해 들어오는지도 함께 봐야 한다. 합의 발표와 실제 이행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가 맞물리는 방향을 보면, 서방 제재의 틈이 일시적 예외에 그치는지 더 넓어지는지 판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