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산업가속화법은 공공조달과 일부 구매 지원에서 유럽산 제품을 우대하는 법안으로, FTA 체결국인 한국을 EU산과 동등하게 대우할지가 쟁점이다. 프랑스·독일이 자동차 부품의 70%를 유럽산으로 조달하기로 합의하며 한국을 우대 대상에서 뺀 탓에 자동차·배터리 업계가 먼저 영향권에 들었다. 정부는 동등성 원칙 적용을 요구하고 있으니, 연말 검토에서 FTA 동등대우 조항과 우대국 명단, 부품 원산지 기준이 어떻게 정리되는지 지켜봐야 한다.

EU 산업가속화법(IAA)은 유럽의 제조 경쟁력을 되살리겠다며 올해 3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내놓은 법안이다. 핵심은 공공조달과 일부 구매 지원에서 유럽에서 만든 제품을 우대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공공이 물건을 살 때 'EU산'에 가점을 주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어디서 만들었나'와 '누가 만드나'를 함께 따진다는 데 있다. 유럽 안에서 생산했거나 EU와 협정을 맺은 나라에서 만든 제품은 유리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밀린다. 한국처럼 유럽에 수출하거나 현지 공장을 돌리는 기업에는 남의 일이 아니다.

Hyundai Motor Group
쟁점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를 어떻게 대우하느냐다. 한국은 EU와 FTA를 맺고 있어 동등한 대우를 받을 근거가 있다. 그런데 유럽의회 일각에서는 FTA를 맺었다는 이유만으로 'EU산' 지위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나온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 기업에는 걸림돌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은 10월 16일 배터리를 뺀 자동차 부품 가치의 70%를 유럽산으로 조달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EU 전체의 확정 규정은 아니지만, 완성차뿐 아니라 부품 공급망까지 규제 대상으로 끌어들이려는 방향이다. 이 합의에서 한국과 튀르키예는 우대 대상 국가 범위에서 빠졌다.
우려가 집중되는 업종은 자동차, 배터리, 원전, 철강이다. 이 가운데 자동차가 가장 먼저 영향권에 들어왔다.
현대차·기아는 이미 유럽 현지 생산을 넓혀 왔다. 현대차는 체코 노쇼비체에서 코나 일렉트릭을, 기아는 슬로바키아 질리나에서 전기차 EV4와 EV2를 만든다. 현대모비스는 지난달 슬로바키아 노바키에 연 28만 대 규모 전기차 구동시스템 공장을 가동했다. 그만큼 유럽 시장에 걸린 것이 많다는 뜻이다. 현대차는 유럽 전기차 판매를 지난해 11만6000대에서 2030년 42만 대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런데도 생산 거점이 우대 국가 밖에 있으면 혜택에서 밀릴 수 있다. 튀르키예 이즈미트 공장에서 2억5000만 유로를 들여 만드는 아이오닉 3가 일부 차량 지원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배터리는 별도의 역내 생산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어, 셀 같은 개별 부품의 원산지까지 따로 맞춰야 하는 과제가 남는다.
한국 정부는 법안이 굳기 전에 움직이고 있다. 김장희 신통상전략지원관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10월 20~21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의회 부의장과 통상·산업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 9명을 만났다. 3월 이후 EU에 정부 입장서를 네 차례 냈고, 10월 15일에는 '산업가속화법 대응 민관합동 태스크포스'도 출범시켰다.
메시지는 일관된다. 한국 기업이 유럽의 현지 생산과 고용, 공급망에 기여해 왔으니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고, 공공조달과 공공지원 전반에 동등성 원칙을 적용해 달라는 것이다. FTA를 맺은 나라를 차별하지 말라는 요구를 제도 안에 못 박겠다는 전략이다.
법안은 아직 확정 전이다. 연말까지 유럽의회 차원의 검토가 집중되는 만큼, 이 기간 뉴스에서 세 가지를 짚으면 흐름이 보인다.
첫째, FTA 체결국을 EU산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조항이 살아남는지다. 이 조항이 약해지면 한국은 불리해진다. 둘째, 한국이 우대 대상 국가 명단에 포함되는지다. 프랑스·독일 합의처럼 명단에서 빠지는 흐름이 굳어지는지 봐야 한다. 셋째, 부품의 유럽산 비율 기준과 보조금 적용 범위다. 비율이 높아질수록, 적용 품목이 넓어질수록 국내 기업의 부담은 커진다. 세 지점의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추진 중'과 '확정'을 구분해 읽는 편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