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프랑스에서 시작된 슈퍼마켓 냉장 설비 원격 조작이 11월 초 유럽 7개국으로 번지며 냉동식품이 녹는 피해가 이어졌다. 공격의 입구는 매장 출입이 아니라 인터넷에 연결된 냉장 제어기의 소프트웨어 취약점이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한국 대형마트는 냉장 설비를 중앙 네트워크로 묶지 않은 곳이 많아 현재 노출은 적지만, 통합 관제 확대가 변수라는 점은 확인해둘 지점이다.
지난 10월 프랑스에서 슈퍼마켓 냉장 설비가 원격으로 조작돼 냉동식품이 녹는 사고가 터졌다. 프랑스 재무장관 롤랑 레스퀴르는 의회에서 전국 1만여 개 매장 중 약 700곳이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인터마르셰와 네토를 운영하는 그루프망 무스케테르는 자사 매장 300곳이 피해를 봤다고 했다.
11월 2일에는 같은 수법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웨덴,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네덜란드 등 7개국으로 번졌다. 외신 집계로 115곳 이상의 매장이 밤사이 공격을 받았고, 일부 냉장고 온도는 영상 50도까지 치솟았다. 벨기에 냉장 설비업체 삽코벨은 공격자가 증발기를 '제상(성에 제거)' 모드로 바꿔 냉기를 끊었다고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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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자는 매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인터넷에 연결된 냉장 제어기를 원격으로 장악해 온도를 올리거나 제상 기능을 켰다. 문제가 된 장비는 덴마크 단포스의 AK-SM 계열과 코프랜드·딕셀의 XWEB 제어기였다. 단포스는 피해 대부분이 소프트웨어·보안 업데이트가 끊긴 구형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일부 설비가 기본 비밀번호를 그대로 쓰거나 보안되지 않은 망에 연결돼 있었다.
취약점 자체는 사고 전에 공개돼 있었다. 보안업체 클래로티 팀82는 2025년 8월 단포스 AK-SM 800A 제어기의 결함을 보고했고, 단포스는 권고문 DSA-2025-08-01을 통해 펌웨어 R4.3.1로 업데이트하라고 안내했다. 즉 알려진 결함을 방치한 구형·연결 설비가 먼저 뚫린 셈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공급망이다. 피해 설비 상당수는 소매업체가 직접 운영하지 않고 외부 냉장 설비 계약업체가 관리하면서, 매장 중앙망 바깥에서 인터넷에 붙어 있었다. 유통업체의 보안이 아무리 탄탄해도, 냉장 설비를 맡긴 협력사의 제어기 한 대가 열려 있으면 그쪽이 입구가 된다.
한국 대형마트는 냉장 설비를 중앙 네트워크로 묶어 원격 제어하는 구조가 아직 일반적이지 않다. 이마트는 냉장 설비를 네트워크로 중앙 제어하지 않아 연결성에서 비롯되는 위험이 없다고 밝혔고, 롯데마트는 점포별로 온도를 수동 관리한다고 했다. 홈플러스는 답하지 않았다. 국내 냉장 쇼케이스는 CRK, 그랜드우성, 한성쇼케이스 등이 공급하며, 유럽처럼 원격 제어기가 인터넷에 상시 노출된 환경과는 결이 다르다.
다만 안전지대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국내에서도 2021년 아파트 638개 단지의 제어반이 해킹돼 약 40만 가구가 영향을 받은 전례가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를 하드웨어 문제가 아니라 중앙 제어 시스템 전반의 취약점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통·물류 현장이 비용 절감과 효율을 이유로 통합 관제와 원격 모니터링을 늘리는 추세인 만큼, 연결을 넓히는 속도에 맞춰 설비 인증과 비밀번호·펌웨어 관리가 따라가지 못하면 한국도 같은 입구를 열어두게 된다.
이번 사고에서 소비자가 직접 할 일은 많지 않다. 온도가 오른 매장은 대부분 해당 제품을 폐기했기 때문이다. 다만 냉장·냉동식품을 다루는 기본 기준은 알아둘 만하다.
식약처 기준으로 냉장식품은 5도 이하, 냉동식품은 영하 18도 이하에서 보관해야 한다. 한 번 녹았다가 다시 언 식품이 위험한 이유는 균 때문이다. 식약처 설명에 따르면 해동한 육류를 상온에 2시간 두면 식중독균이 최대 64배까지 늘 수 있고, 해동과 재냉동을 반복하면 처음보다 10배 이상 늘어난다.
그래서 가정에서는 완전히 녹은 냉동식품을 다시 얼리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 장을 본 뒤 냉동식품이 물러져 있거나 포장 안에 성에·물기가 많이 차 있다면 유통 중 온도가 오르내렸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해동은 상온이 아니라 냉장실이나 흐르는 찬물에서 하고, 조리한 음식도 상온에 2시간 넘게 두지 않는 것이 식중독을 피하는 가장 단순한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