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테라파워가 HD현대중공업의 주기기 공급, 현대건설의 EPC, SK의 지분 투자, 수출입은행의 금융 지원까지 묶어 차세대 나트륨 SMR에 한국 기업들을 끌어들였다. 한국은 원천기술을 쥔 설계 주도가 아니라 제작·금융 파트너로 미국 주도 SMR 공급망에 편입되는 구조다. 실제 수출 성과는 2030년 완공을 목표로 한 미국 케머러 1호기가 예정대로 가동되는지에 달려 있다.
빌 게이츠가 8월 14일 한국을 찾으면서 그가 세운 SMR 기업 테라파워와 국내 기업들의 협력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핵심은 한국 기업이 테라파워의 차세대 원자로 '나트륨' 사업에 여러 층위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역할이 나뉘어 있다. HD현대중공업은 나트륨 원자로 주기기의 핵심 설비를 제작·공급하는 우선협상자 지위를 확보했고, 2026년 5월 기본합의서를 맺었다. 현대건설은 설계·조달·시공을 함께 맡는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테라파워의 2대 주주로 총 2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한 상태다. 여기에 수출입은행이 8월 15일 빌 게이츠와 만나 대출과 보증을 묶은 금융 지원을 논의했다.
나트륨은 물이 아니라 액체 나트륨으로 열을 식히는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 기반 SMR이다. 용융염에 열을 저장해 뒀다가 전력 수요가 몰릴 때 출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24시간 일정하게 돌아가는 기저전원과 수요에 맞춘 출력 조절을 함께 노린 설계다.

jason hu
한국 원전 산업의 강점은 대형 원전을 제때, 예산 안에 지어내는 제작·시공 역량이었다. 이번 협력은 그 역량을 차세대 SMR의 주기기 제작과 EPC로 옮겨 붙이는 시도다. 설계와 원천기술은 테라파워가 쥐고, 한국 기업은 그 설계를 실제 설비로 만들어 내는 공급망 파트너로 들어간다.
이 구도는 기회이자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직 상업 운전 실적이 없는 4세대 노형의 공급망에 초기부터 자리를 잡는다는 점은 분명한 기회다. 미국 수출입은행 등과 공동 금융 구조까지 짜이면, 한국의 원전 기자재 기업들이 미국을 발판으로 제3국 수출에 나설 발판이 생긴다. 다만 사업의 방향타를 쥔 쪽이 테라파워라는 점에서, 한국의 위치는 설계 주도가 아니라 제작·금융 파트너에 가깝다.
수요 쪽 동력은 뚜렷하다. AI 데이터센터가 늘리는 전력 수요가 SMR 시장을 밀어 올리고 있고, 테라파워는 이미 메타와 2035년까지 최대 8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대형 원전 한 기를 수주하는 것과 달리, SMR은 공장에서 찍어내듯 여러 기를 반복 생산하는 방식이라 제작 역량을 갖춘 기업에는 물량이 꾸준히 이어질 여지가 있다.
기대와 별개로, 이 사업은 아직 증명 단계다. 실체를 가르는 첫 관문은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짓는 나트륨 1호기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로부터 상업용 건설허가를 받았고, 완공 목표는 2030년이다.
지켜볼 지점은 세 가지다.
정리하면, 발표는 협력의 시작점이지 성과가 아니다. 한국 기업의 참여가 수출 실적으로 잡히려면 케머러 1호기가 예정대로 돌아가고, 그 뒤로 추가 발주가 이어져야 한다. 지금 나온 숫자들은 계약과 목표이지 완공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